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 앞에서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청년하다 관계자 등이 LH 땅 투기 중단 및 대학 공공기숙사 투자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3.26 연합뉴스
이주희 ㅣ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아파트, 직업, 재산은 모든 선거의 핵심 이슈들이자 칼 폴라니가 <위대한 전환>에서 언급했던 대표적인 허구적 상품들, 즉 토지, 노동, 화폐의 발현이다. 삶과 분리될 수 없는 노동의 상품화는 시장의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 적용될 때 고용불안과 실업 같은 병폐를 가져와 인간을 피폐화시킨다. 화폐란 구매력의 징표에 불과하다. 토지는 자연의 일부분으로 그와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과 분리된 채 거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폴라니는 그중에서도 특히 토지를 상품화한 것이 가장 기괴한 일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을 토지와 분리시켜 부동산 시장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방식으로 사회를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시장경제 혹은 자기조정시장이라는 ‘공상적’ 개념의 핵심이다.”
경제가 사회에 배태되어 있다고 믿는 폴라니는 이런 허구적 상품들로 시장경제가 사회 전체에 해를 끼칠 때 사회는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이중운동의 원리를 밝혔다. 예를 들어 수많은 노동입법과 미국의 뉴딜정책도 반운동의 결과이다. 금융시장이 완벽하다면 중앙은행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선진국이 농민과 농토를 보호하고 외국인의 부동산 매입에 강한 규제로 대응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문제는 이중운동의 방향이다. 집은 삶의 가장 기본적인 안정성을 제공해주는 장소로, 어떤 이유로도 투기꾼들의 놀이터는 물론 투자 상품조차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시장이 인간의 삶을 망쳐갈 때 규제 없는 시장으로부터 더 큰 이득을 얻어오며 조직된 목소리는 항상 그 반대를 외쳐왔으며,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 자유로운 거래, 더 적은 세금, 더 많은 공급.
일자리는 어떠한가. 기본소득을 주창하는 학자로 잘 알려진 필리프 판파레이스는 복지자본주의하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사람을 “직업 자산가”로 칭하며 자본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대학원을 다니던 1990년대 초 다소 의아했던 이 주장은 차명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다닐 테니 “부러우면 이직하라”는 엘에이치(LH) 직원의 말을 통해 완벽한 경험적 근거를 획득했다.
소수의 투기꾼에게 막대한 부의 축적 기회를 제공해온 부동산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지난 수십년간 집과 땅에 대해 우리가 가져온 생각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 집과 토지는 일반 상품처럼 거래되어서는 안 된다. 생산적인 경제활동에 여유자금이 돌 수 있도록 부동산에 대한 규제를 지금보다 훨씬 더 확대하는 것은 투기꾼이 아닌 모든 국민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이다. 양질의 공공임대주택 제공이 투기적 수요를 유발해온 재개발보다 우선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해충돌방지법은 물론 토지공개념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한 입법도 시급하다.
그렇다면 다주택자에 비해 한 주택만을 소유하거나 그나마 없는 국민의 수가 절대다수임에도 왜 부동산 규제와 다주택자에게 부과되는 높은 세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이렇게 큰 것일까? 실거주 외 비생산적인 투기적 목적으로 얻은 이윤에 징벌적 수준의 세금을 부과해 투기를 무력화시키자는 이 단순한 일이 왜 정치적으로 불가능했을까?
경제학자 앤서니 다운스의 의견처럼, 민주주의하에서의 선거는 최대한의 효율보다 낮은 수준에서 작동할 수밖에 없다. 지식은 불완전하며 제대로 된 정보는 비싸다. 한 시민의 표가 미칠 수 있는 영향이 결정적일 확률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런 고비용 정보는 투표를 위해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는 노력을 어렵게 만든다. 이런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정치적으로 더 중요한데, 그들은 유권자에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바이어스(편향성) 가득한 사실만 골라 제시함으로써 실제 투표의 향방에 영향을 끼쳐왔다.
대의민주주의하에서의 정치적 현실이 이렇다고 체념한다면 우리는 이 부동산 지옥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미쳐 날뛰는 부동산 시장을 제어할 제대로 된 이중운동을 요구하는 기회로 이번 선거가 활용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