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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공존과 연대라는 새로운 보편 / 이재훈

등록 2021-03-30 18:35수정 2021-03-31 02:42

이재훈 ㅣ 사회정책팀장

코로나19는 재난마저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통계청의 2020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월평균 가구 근로소득이 59만6천원인 소득 1분위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4분기에 견줘 근로소득이 13.2%나 줄었다. 소득 2분위(188만2천원)도 5.6% 줄었다. 소득 3분위(303만1천원)와 4분위(427만9천원)는 변화가 없었고, 소득 5분위(721만4천원)는 되레 1.8% 늘었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저소득층의 근로소득은 2020년 내내 감소 추세였지만, 고소득층의 근로소득은 “2분기 때 잠시 하락한 이후 빠르게 회복”했다. 코로나19 발생 1년이 지나가면서 저소득층은 끝 모를 소득 감소로 계속 고통받고 있지만, 고소득층은 잠시 주춤하다 곧 재난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근로소득뿐만 아니다. 2020년 월평균 전국 자영업자 수는 553만1천명으로 2019년보다 7만5천명(1.3%) 줄었다.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가 29일 공개한 전국 자영업자 1545명 대상 실태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1.4%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부채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평균 부채 증가액은 5132만원이다. 응답자의 44.6%는 “폐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자영업의 붕괴도 영세한 곳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국가는 이 재난을 재난으로 보지 않고 있다. 사회공공연구원의 보고서 ‘코로나19 위기와 외국의 사회보장 대응’을 보면,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추가 총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3.4%에 불과했다. 한국을 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35개국 평균은 7.3%였다. 주요 20개국(G20) 중에서도 한국보다 지출이 낮은 국가는 인도(3.1%), 러시아(2.9%), 인도네시아(2.7%), 사우디아라비아(2.2%), 터키(1.1%)뿐이다. 지출 규모가 큰 국가들의 지원은 취약층을 향했다. 독일은 프리랜서와 1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 일회적으로 9천유로(1199만여원)~1만5천유로(1999만여원)를 지급했다. 스페인은 가사노동자에게 일정 기간 최저임금 수준인 990유로(131만여원)를 지급했다. 캐나다는 임차상인의 임대료를 75% 감면했다. 그러나 한국은 시민들과 의료진의 일방적인 인내와 희생만 요구하고 있다. ‘말로만 하는 방역’이란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그나마 남은 희망은 백신 접종으로 집단 면역을 형성하는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기서마저 ‘말로만’ 접종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28일 백신휴가 방안을 밝히면서 기업 등 민간 부문에는 유급휴가 사용을 권고하는 수준에 그쳤다. 노동조합의 발언권이 강한 대기업이 아니면 백신휴가를 쓰기 어렵게 됐다.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직에 대해선 백신휴가를 위한 소득 보전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백신휴가를 의무화하지 않은 까닭을 두고 “이상반응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접종자의 1~2%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은 불과 2주 전 백신 접종자 1만8천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32.8%가 고열, 근육통 등과 같은 이상반응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세월호 참사 때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기회를 놓쳤다. 곧 참사 이후 7년이 되어가지만 생명보다 이윤이 우선하는 사회는 여전하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아래로부터의 붕괴는 지난 7년 동안 방치된 오늘이 던지는 경고장이다. 게다가 한국 시민들은 그 어떤 나라보다 앞장서 나와 남이 보이지 않는 공기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공존의 철학, 함께 살기 위해선 모두가 하나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연대의 철학을 조금씩 새로운 보편으로 인식하고 있다. 국가가 이런 상황마저 외면한다면, 다시 돌아올 7년은 앞선 7년보다 더 가혹한 경고장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국가의 역능에 대한 지독한 냉소가 불러올 각자도생의 지옥도 같은.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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