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숨&결] 동료 정치인에게 말하고 싶다 / 배복주

등록 2021-03-31 13:36수정 2021-04-01 11:32

배복주ㅣ정의당 부대표

초등학교 6학년 때인지 기억이 어렴풋하지만 같은 반에 나와 같은 장애가 있는 남학생이 있었다. 당시에는 학급 반장은 성적순으로 반장 후보가 되었고, 그 장애 남학생은 1등의 성적으로 반장 후보에 올랐다. 담임선생님은 그 학생에게 “할 수 있겠니?”라고 물었고, 학생은 “저는 사퇴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칠판에 적힌 그 학생의 이름을 지웠다. 나 또한 중학교 때 같은 경험을 했다. 사실 나는 반장이 되고 싶어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 공부를 했고 반장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선생님의 ‘친절’한 권유로 후보 사퇴를 했다.

초등학교 때 그 장애 남학생은 정말 사퇴하고 싶었을까? 만약 그 학생이 우리 반 반장이 되었다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나는 왜 그토록 반장이 되고 싶었을까?

나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거나 놀리고 도망가는 친구들을 혼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반장이 되면 놀림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 장애 남학생과 나는 따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우리는 장애 편의시설도 제대로 없고 대신 장애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했던 학교 문화에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만약 우리 같은 장애 학생이 반장이 될 수 있었다면 조금은 다른 환경과 인식으로 변화를 이끌 수 있지는 않았을까.

그 시절 기억을 뒤로하고 지금은 정치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치 입문과 동시에 21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를 경험했다. 선거운동은 시작부터 장벽에 부닥쳤다. 유세 차량에 오를 수도 없었고 재래시장을 누비며 인사하기도 힘들고 선거 율동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변화를 기대하는 유권자들을 향한 말이었다. 나의 경험과 유권자의 경험이 연결될 수 있는 말로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에 대한 희망의 언어, 울림의 언어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거운동 현장엔 상대를 비난과 폄하로 공격하는 언어가 넘쳐났다. 대부분은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에 기반한 말들이었다. 선거운동의 공간에서 학창시절 반장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소환되어 다시 초라해지기도 하고 두려워지기도 했다.

장애인 동료 시민의 경험이 상대를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데 이용되었다. 정치인이 연설에서 무능하고 실패한 사람을 장애로 표현하고 공격하는 행위는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연결된다.

정치인이 성소수자 동료 시민을 병리화하고 부정하는 언사를 함부로 하게 되면 혐오를 용인하게 하고, 암묵적으로 배제를 허용하게 만든다.

이주민 동료 시민을 정책에서 배제하고 고려하지 않는 정치인의 태도는 그들을 다르다는 이유로 공동체 밖으로 추방하게 만든다.

청년과 청소년 동료 시민이 미성숙하고 인식이 낮다는 정치인의 표현은 그 세대의 경험을 존중하기보다 위계를 만들고 소통을 가로막는다.

여성 동료 시민을 고정된 성역할에 가두는 정치인의 표현은 성차별 인식을 강화시킨다.

정치인은 자신이 하는 발언이나 연설이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정치인의 차별적 인식은 혐오를 낳고 폭력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최근 4·7 재보궐선거의 선거운동에서 거대 양당과 그 후보들이 쏟아내는 말을 마주할 때 참담한 심정이다. 성소수자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말하고, 상대 정치인을 비판하고자 중증치매환자로 비유하고, 청년은 경험치가 낮다고 단정하고, 여성을 돌봄 역할로 한정하고, 사람을 쓰레기 분리수거로 표현하고 있다. 후보들은 정책이 아니라 막말로 경쟁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 재보궐선거를 하는 이유가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의 위력 성폭력에 의한 것임에도 피해자를 존중하거나 고려하는 모습은 전혀 없다.

놀림받고 싶지 않아서 학급 반장이 되고 싶었던 마음은 누구도 혐오와 폭력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외침이 되었다. 동료 정치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한 사람이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살아가지 않기에 시민으로, 동료로, 삶으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당신 곁의 동료 시민들이 외치고 있는 평등을 외면하지 말고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응답하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김건희 수사지휘부 전원 교체, 윤 대통령 무엇이 두려운가 1.

[사설] 김건희 수사지휘부 전원 교체, 윤 대통령 무엇이 두려운가

‘김건희 수사 라인’ 싹 물갈이, 수사 말라는 신호 아닌가 [사설] 2.

‘김건희 수사 라인’ 싹 물갈이, 수사 말라는 신호 아닌가 [사설]

윤 대통령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성한용 칼럼] 3.

윤 대통령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성한용 칼럼]

[사설] 감사위가 ‘보류’ 결정 내린 ‘대통령 관저’ 의혹 ‘부실감사’ 4.

[사설] 감사위가 ‘보류’ 결정 내린 ‘대통령 관저’ 의혹 ‘부실감사’

[유레카] ‘원영적 사고’라는 새로운 밈 5.

[유레카] ‘원영적 사고’라는 새로운 밈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