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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블랙코미디와 ‘설강화’ / 손아람

등록 2021-03-31 16:16수정 2021-04-01 15:18

손아람ㅣ작가

가장 무겁게 처벌받는 범죄 유형은 뭘까? 답은 ‘외환의 죄’다. 법정 형량을 온통 사형과 무기징역으로 정한 이 죄목에서 가장 가벼운 편에 속하는 간첩죄의 경우조차, 방조하기만 해도 최소 7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진다. 살인죄의 법정 최소 형량은 5년이다. 국가보안법은 좁고 깊게 설치된 형법의 덫이 적용되는 범위를 넓히기 위해 입안된 특별법이다. 오랫동안 국가보안법의 부당함을 알리는 목소리가 있어왔지만, 대중의 인식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건 어쩌면 한국의 대중영화들일 것이다.

‘간첩물’은 한국 영화에만 존재하는 카테고리다. 한국 간첩물의 서사는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첩보원끼리 이해관계가 충돌하거나 목숨을 위협받는 해외 첩보영화의 서스펜스와는 궤를 달리하는 드라마를 꼭 포함한다. 간첩을 다룬 이야기의 가장 큰 불안과 긴장은 간첩이 무얼 하느냐가 아니다. 그가 간첩이라는 사실 그 자체다. 간첩의 정체성은 물론 간첩을 인간적으로 받아들이는 시도 자체가 중대한 불법이기 때문이다.

이 장르를 개척한 <쉬리> 속 국가정보요원은 자신이 쫓던 간첩이 결혼을 앞둔 애인이었음을 알게 된다. 영화의 설정은 도발적인 질문을 남긴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 혹은 내 가족이 법이 정한 주적이라면? 그는 나에게도 주적이어야 할까? 비슷한 딜레마에 도달했던 <공동경비구역 JSA> <이중간첩> <의형제> <사랑의 불시착>의 서사적 원형은 모두 <쉬리>와 동일하다. 다른 편에는 진지한 무게를 덜어내고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위장 간첩의 세계를 코믹하게 다룬 이야기들도 있다. 이 범주의 첫 영화였던 <간첩 리철진>에는 한국 세속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에 농락당하고 분개하는 순진한 간첩이 등장한다. 물론 그가 돌아갈 북한 역시 부조리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국가다. 동네 백수로 위장한 간첩을 내세운 <은밀하게 위대하게>와 고등학생 간첩이 나오는 <동창생>이 계보를 잇는 이야기다. 코미디가 성립하는 순간은 체제의 악과 인간적인 악 사이 문제의 우선순위가 일치하지 않을 때다. 간첩이 잡범에게 호되게 당하거나 훈련받은 능력으로 학원 폭력을 해결한다거나. 이 이야기들은 법을 한마디 언급하지 않아도 사실상 국가보안법에 도전하고 있다. 법이 어떤 부류의 인간을 절대악으로 규정할지라도 인간은 법으로만 규정될 수 없다는 자연스러운 상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간첩을 다룬 많은 이야기가 크게 흥행한 것은 관객과 시청자들이 이 금지된 상상에 호응했다는 뜻이다.

간첩과의 로맨스, 체제 대결 세태의 블랙코미디 양쪽을 다 표방한 드라마 <설강화>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 한국 간첩 서사의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 ‘민주화 운동가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간첩’이었다는 시놉시스의 설정이 바뀌지 않는 한 그럴 수는 없겠다. 아무리 유능한 작가의 손을 거치더라도 이 설정에 함축된 역사적 질문이 기존 간첩물과 같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국가 폭력의 법적 근거로 악용된 무수한 사례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을 지지해온 측의 논리를 더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지 않을까?”

<설강화>가 어렵고 위험한 길로 빠진 건 역사를 성실히 들여다보는 노력이 모자랐기 때문일 터다. 국가정보기관이 간첩을 잡아온 역사는 그 자체로 완성도 높은 블랙코미디니까 말이다. 몇년 전 황장엽을 대신 암살해주겠다며 진짜 간첩에게 접근해 거액의 활동비를 가로챈 간 큰 사기꾼 일당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된 일이 있다. 국가보안법의 엄벌을 피하려면 ‘순수한’ 사기성을 입증해야 했기에, 변호인이 법정에서 피고인들의 극악무도한 사기 전력을 줄줄이 읊어나가는 촌극이 벌어졌다. <설강화>의 코미디는 이보다 웃길 수 있을까?

간경화 치료비를 벌어 가족이 있는 북한으로 돌아가고자 한국으로 밀입국했던 김련희씨는 국정원 신문소에서 계획을 순진하게 다 털어놓았다. 국정원은 북한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못 박은 뒤 한국 국적을 취득하도록 강요했다. 그녀는 가족에게 돌아갈 요량으로 스스로 간첩 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며 북으로의 송환을 요구했다. 김련희씨 자신은 물론 국가정보원과 법원조차 그녀가 절박하게 가족을 되찾고 싶은 여성일 뿐임을 알았지만, 사법체계의 형식적 흠을 남기지 않기 위해 간첩죄로 처벌해야 했다. <설강화>의 멜로는 이보다 절절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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