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앞에서의 겸손함’이 탁월한 문학적 수사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기억의 불확실성과 자의성에 대한 진지한 자기성찰 없이 저런 표현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런 능력은 영리함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영리함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뇌과학자들이 기억의 기제를 설명한 것들을 보더라도 저토록 사려 깊은 표현을 만날 수는 없다.
가령, 2000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에릭 캔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기억은 그 핵심에서 보면 심장 박동과 다르지 않은 생물학적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더없이 명쾌하지만, 겸손이나 성찰 대신 상실감을 안긴다. 로맨틱한 기억도 쓰라린 기억도 저 설명 앞에서는 질적 차이를 상실한다. 그러나 오늘날 뇌과학자들의 이론을 참조하지 않고 기억의 원리를 설명하는 건 불가능하다.
뇌과학은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에서 뻗어나온 ‘축색돌기’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기억이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축색돌기들의 연결점을 ‘시냅스’라고 하는데, 연결의 강도에 따라 기억은 오래가기도 하고 짧게 가기도 한다. 수십년을 지속하는 장기기억은 단백질 합성을 통해 시냅스의 구조가 단단해지는 ‘응고화’의 결과다. 그런데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은 복불복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생존과 관련한 유불리가 핵심 변수다.
기억의 이런 특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선택적 기억상실’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특정한 경험을 둘러싼 앞뒤 시간대의 기억을 잃는 것인데, 생존에 유리한 건 남기고 불리한 건 지우려는 기제가 극단적으로 작동할 때 나타난다. 물론 뇌과학에서는 양심이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생화학적인 작용의 결과일 뿐이다. 아니, 뇌과학은 양심과 도덕도 생화학적인 기제로 환원해 설명한다.
자신의 기억(혹은 ‘기억 없음’)이 여러 사람의 기억과 어긋나는 상황을 ‘기억 앞에서의 겸손함’으로 승화하는 건 뇌과학의 관점에도 부합한다. 더구나 잘 정제되고 가치중립적인 표현은 과학적 엄결성에 품위까지 드높인다. 다만, 타인에 대해서도 일관성을 유지할 때의 얘기다. 같은 사람 입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중증 치매 환자”라는 말이 나왔다면, ‘기억 앞에서의 겸손함’은 뻔뻔한 말장난이자 집단기억에 대한 교활한 조롱에 불과하다.
안영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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