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 ㅣ 낯선 과학자
“독일과 일본을 조기에 통제하지 못해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중국에게만은 똑같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의 발행인이던 스티브 포브스가 한 말이다. 미-중의 패권경쟁은 트럼프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던, 수준 낮은 대통령이었을 뿐이다. 미국의 엘리트 대부분은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신념을 공유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대선 토론에서 시진핑 주석을 “깡패”라고 했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다양한 분야로 확산 중이다. 미국은 화웨이를 비롯한 기업뿐 아니라, 하얼빈 공대 같은 대학까지 블랙리스트에 올려, 이들이 미국 기술을 사용할 수 없게 제한 중이다. 이 조치 때문에, 하얼빈 공대 학생과 교직원은 미국 입국이 금지되었을 뿐 아니라, 매트랩 같은 미국 회사의 교육 소프트웨어도 사용할 수 없다. 미국 대학 및 연구소에 거주하는 중국 과학기술자들은 스파이 혐의를 받고 있으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중국 박사학위자의 수는 급감했다. 중국과 공동연구를 수행하던 미국의 과학기술자들도 이제 중국과 교류하기를 꺼린다. 미-중 패권경쟁의 핵심엔 과학기술이 있다.
국가 간의 갈등은 사회 수준에선 인종차별로 나타난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동양계 여성들에 대한 참혹한 테러는, 트럼프 정부 시절부터 미국 정부가 방치했던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미국 사회 전반에 걸쳐 통제되지 않은 형태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시민사회에 퍼지는 인종차별을 방치함으로써, 국가 간의 경쟁에서 정당성을 획득한다. 물론 표면적으로 인종차별이라는 반인권적 행동을 옹호하는 정치인은 없다. 하지만 전쟁이나 역병처럼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국가권력은 언제든 인종차별을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독일의 나치와 미국의 이민법 모두 국가가 언제든 권력을 위해 인종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코로나19는 시작부터 중국에 대한 혐오로 시작되었다. ‘우한 폐렴’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고, 트럼프는 대놓고 “중국 바이러스”라고 했다. 혐오는 곧 동양인 전체로 확산되었다. 미국은 동양인 혐오가 가장 극명한 서구사회일 뿐이다. 유럽에서도 동양인 혐오가 표면화되고 있다. 자유와 인권의 나라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시기 프랑스에서 벌어진 인종혐오를 추적한 파리정치대학의 김진리는, 그의 논문 <황화론의 재부상: 코로나19 바이러스 시대 프랑스 사회의 동양인 혐오>를 통해, ‘모델 마이너리티’, 즉 모범적인 소수 인종집단으로 인식되던 동양인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코로나19 사태와 합쳐지면서 ‘황화론’, 즉 “황인종이 백인 중심의 서구사회를 위협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표면화되었다고 말한다.
황화론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했던, 황인종들에게 정복당할지도 모른다는 유럽인의 위기론이다. 황화론이라는 단어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가 처음 사용했는데, 그는 이 논리로 러시아 황제 차르에게 황인종에 맞서 유럽과 기독교 문화를 지키자며, 일본과 전쟁할 것을 요구했다. 중국 칭다오(청도)를 식민지로 삼은 빌헬름 2세는 ‘훈 연설’을 통해 황인종에 대한 혐오와 공포를 선동했으며, 일본은 이에 맞서 ‘범아시아주의’를 내세우며 반발했다. 러시아가 러일전쟁에 패하자, 독일은 러시아를 열등한 ‘훈족’, ‘반아시아인’이라 폄하했다. 19세기 말의 유럽은, 인종주의로 뒤범벅된 혼란스러운 땅이었다.
코로나19와 함께 서구에서 다시 황화론이 부상하고 있다. 황화론의 재부상은 중국이 강대국으로 떠오르면서 예견된 것이다. 게다가 코로나19의 발원지 중국은 가장 먼저 코로나19에서 벗어났고, 한국·대만·싱가포르 등의 아시아 국가들은 가장 모범적으로 방역에 성공했다. 19세기 말 유럽을 뒤덮었던 황색 공포가 다시 시작되었다. 비극을 멈춰야 한다.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건 유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