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자신의 정치 성향을 숨기는 이유는 셋 중 하나다. 공연한 분쟁에 휘말리기 싫거나, 불이익이 두렵거나, 부끄럽거나. 권위주의 정권 시절엔 두려움 때문에 입을 닫았다. 말 한번 잘못하면 불이익 수준을 넘어 형사처벌까지 받는 경우가 흔했던 탓이다. 1987년 민주화로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하고 경쟁적 정당구도가 정착된 뒤에도 사람들은 어지간히 친밀한 사이가 아니면 정치적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았다. ‘반공 병영사회’가 남긴 트라우마였다.
‘숨은 표’란 말이 정치사회에 유통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후반이다. 여론조사에 근거한 선거 예측이 활발해진 시기다. 1997년 대선 직전 언론 보도에선 “여론조사에 안 잡힌 김대중 후보의 숨은 표 3~4%를 주목해야 한다”는 진단이 자주 등장했다. ‘숨은 표’란 표현 자체는 그 무렵 유행했던 텔레비전 광고 카피 “숨어 있는 1인치를 찾아라”에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언론은 대표적인 ‘숨은 표’로 “원적이 호남인 영남 거주 유권자”를 꼽았다.
과거의 야당 지지자들이 불이익이 무서워 정치 성향을 숨겼다면, 21세기의 한국 보수층은 ‘부끄러워서’ 감췄다. ‘샤이 보수’다. 이 표현은 2016년 박근혜 탄핵 정국을 전후해 등장했다. ‘무능과 부패의 화신’으로 전락한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표 안 나게’ 지지하는 보수층을 가리켰다. 1990년대 영국의 ‘샤이 토리’(부끄러워하는 보수당 지지자)가 원조다. 국내에선 2015년 도널드 트럼프를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지지하는 ‘샤이 트럼프’를 통해 유명해졌다.
4·7 재보선을 앞두고 ‘샤이 진보’가 회자된다. 얼마 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샤이 진보가 있는 건 분명하다. 민주당이 여러가지 부족했지만 올바른 길로 나가기 위해 1번을 찍어야 한다는 유권자의 결집이 시작됐다”고 했다. 여론조사 격차에 압도돼 투표를 포기하려는 지지층을 향해 ‘내가 찍으면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는 차원에서 민주당의 ‘샤이 진보론’은 전략적 합리성에 충실한 선택이다. 그러나 ‘진보’를 자처해온 세력이 ‘부끄러워 숨은 표’에 기대 거는 현실은 낯설다. 어쩌다 부끄러움이 진보 유권자의 몫이 되었나.
이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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