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ㅣ 시인·<동시마중> 편집위원
충북 괴산의 미선나무 축제 현장을 보여주던 여성 리포터의 멘트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중요한 말은 왜 매번 ‘그런데’ 뒤에 놓이는지. “그런데요, 미선나무 꽃말이 뭔지 아세요?” 꽃말은 그 말이 그 말 같아서 도무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고 별 재미도 느껴지지 않던데, 글쎄, 뭘까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고 합니다. 축제 현장에 오시면 꺾꽂이가 된 작은 미선나무 화분을 무료로 나눠드린다고 하니….”
깜짝 놀라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몸을 반듯이 일으켜 앉혔다.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고? 이건 단순한 말이 아니라 세상없는 명의가 나에게 끊어 주는 처방전 아닌가.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 전체를 바닥 없는 슬픔과 분노의 구렁으로 몰아넣은 때였고, 그에 더해 내 것이 되리라곤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개인적 비참이 이중으로 나를 옥죄던 때였다. ‘그런데’ 모든 슬픔이 어떻게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고통 없는 영화는 희망 없는 판타지”라는 마흐말바프의 말마따나 슬픔 없는 인생 역시 희망 없는 판타지가 아닐까. 사라지기를 갈망하되 간직해야 할 슬픔을 지키지 못한다면 이 말은 금세 환각으로 휘발하고 말겠지. 그러니 미선나무를 심을 땐 온전히 심을 게 아니라 가지 하나를 잘라 갖고 있어야 한다. 날이 밝자마자 사는 데서 그리 멀지 않은 괴산에 다녀오리라 했다.
며칠이 지났다. 괴산은 다녀오지 않았다. 슬픔이 없다면 사랑도 있을 수 없기에. “허기진 개한테 밥을 주려다 손을 물리고도 다음날 그 개에게 다시 음식을 주러 가는 사람”(김지석 전 부산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가 마흐말바프를 가리켜 한 말) 같은 이들이 개인의 슬픔을 초월하는 공통의 고통에 호소하는 말을 가질 수 있을 거다.
얼마 뒤 찬거리를 사러 간 동네 마트 입구엔 봄꽃 화분 판매대가 설치돼 있었다. 고만고만한 꽃들 앞에는 이름표가 박혀 있고, 공교롭게도 이름 밑에는 꽃말이 하나씩 적혀 있었다. 전에 없던 일이어서 가슴이 뛰었다. 아니나 다를까. 평범한 꽃말 사이에서 정신이 번쩍 드는 문장이 나타났다.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관상용으로 많이 기르는 꽃기린 꽃말이었다. 불과 며칠 사이에, 어떤 필연성도 갖지 않은 문장 두개가 꽃말의 형식으로 나에게 온 것이다. 얼떨결에 나는 세상이 내린 시적 명령을 이행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이 꽃말로 시를 쓰라는.
이왕 쓸 바엔 동시로 써서 어린이와 어른들 곁에 놓아주고 싶었다. 그러자면 이 말은 어린이에게 먼저 발견되어 어른에게 도착하는 방식이어야 알맞을 것 같았다. 한 아이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꽃을 좋아해서 학교나 학원에 다녀올 때면 동네 꽃집에 들르곤 하는 아이다. 이날은 마침 꽃집에서 미선나무와 꽃기린의 꽃말을 만난다. 아이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 두 문장을 공책에 적어 집으로 돌아온다. 문을 열고 엄마를 부른다. 아이를 맞이하는 엄마 앞에서 이 시는 낭독된다. 따를 수밖에 없는 내 아이의 목소리로.
“엄마, 꽃집에서 적어 왔어//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이건 미선나무,//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이건 꽃기린.// 둘을 붙이면,// 모든 슬픔이 사라진 다음에도/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엄마, 우리 이 말 기르자”(‘사월 꽃말’ 전문).
앞의 미선나무 이야기는 따로 떼어 이렇게 적었다. 낭독은 아이에게 화답하는 어른 목소리가 알맞겠다.
“미선나무를 심을 땐,// 가지 하나를 잘라/ 갖고 있자// 모든 슬픔이 사라지면/ 안 되니까// 슬픔 하나는,/ 잘 말려서 갖고 있자”(‘사월 꽃말 2’ 전문).
이듬해 봄, 잡지에 발표된 ‘사월 꽃말’ 연작을 읽은 지인이 어린 미선나무 몇그루를 보내왔다. 마당가에 심기 전 가지 하나를 잘라 세월호 리본 모양 고리를 만들었다. 고리는 잘 말려서 갖고 있지만 슬픔은 말리지 못했다. 슬픔은 마르는 게 아니라 잘린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