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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숨&결] 당신의 사월 / 이길보라

등록 2021-04-14 15:22수정 2021-04-15 02:36

이길보라ㅣ영화감독·작가

2014년 4월16일, 첫 장편영화의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속보가 떴다. 곧 있으면 구조되겠지, 목포신항 바로 앞이라는데. 구조되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편집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집중하기 어려웠다.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이 되면 해결되었을 거라고, 그럼 휴,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일상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호는 그대로 침몰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무언가를 해야 했지만 영화를 완성해야 했다. 광화문에 가지 못한 채로 사월을 보냈다. 영화를 완성했지만 극장에 오시라고 말할 수 없었다. 기뻤지만 마냥 기쁠 수 없었다. 미안함과 죄책감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농성 천막을 피해 다녔다. 혹여 서울 광화문에 갈 일이 있다면 지하보도로 이동하거나 광장을 지나지 않는 노선을 택했다. 멀리 돌고 돌았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로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생존자 응우옌티탄과 응우옌떤런이 2015년 4월 한국을 방문했다. 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찍고 있던 차라 함께 서울을 둘러보았다. 경복궁을 관람하고 세종대왕 동상으로 향하는 순간 저 멀리 노란 리본이 보였다. 아차, 길을 잘못 택했다고 생각하던 차에 응우옌티탄이 물었다. 저게 무엇이냐고. 돌아갈 수 없었다. 작년 4월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했다. 통역을 하던 베트남 자원봉사자가 말을 잇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학살로 가족을 잃은 이들이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참사 피해자에게 공감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응우옌떤런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가지고 있던 지폐를 성금으로 쓰라며 내어놓았고 당신의 이름으로 서명을 했다. 무릎을 꿇고 구조되지 못한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들여다보았다. 응우옌티탄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끌어안았다. 아주 오래 울었다. 그 순간은 영화에 담기지 않았지만 영화를 완성해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전쟁 당시의 학살과 세월호 참사,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던 때였다. 이들을 좇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영화를 완성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한 후 베트남에 있는 응우옌티탄과 온라인으로 연결하여 관객과의 대화 행사를 진행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어머니가 찾아와 말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영화 잘 봤다고, 우리 지지 말자고, 계속해서 싸우자고. 영상통화로 말을 전하자 응우옌티탄은 말했다. 같은 마음이라고, 아직도 노란 리본을 기억한다고, 이 대답을 꼭 전해달라고 했다. 한국에 머무르는 내내 응우옌티탄은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다녔다.

영화 <당신의 사월>은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았던 당신과 나의 4월16일을 기록한 영화다. 주인공 중 한명은 아내와 택시를 탔던 일을 회고한다. 광화문을 지나는데 택시 기사가 “지겹다, 지겨워”라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집단적 트라우마로 힘겨워할 때였다. 아내는 말한다. “아니, 왜 지겨워요?”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순간에 그는 정확하게 마주하기를 택한다. 당신의 그 말이 어떤 폭력과 방조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지적한다. 귀찮아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맞섬으로써 연대한다. 일상에서의 연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주인공은 말한다. 4월16일이 오는 걸 어떻게 하냐고. 그렇다. 4월16일은 계속해서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마주하자. 당신과 나의 사월을 기억하고 말해보자. 그리고 잊지 말자. 국가는 단 한명도 구하지 못했다. 이 정부는 아이들의 희생으로 바꿔낸 ‘촛불정부’이며 올해 4월16일은 사실상 현 정권의 마지막 4월16일이다. 극장에서 <당신의 사월>을 함께 보자. 진심으로 애도하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명확하게 직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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