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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당신 주변의 입사 4년차를 주목하라 / 김용섭

등록 2021-04-18 11:38수정 2021-04-19 02:04

[뉴노멀-트렌드]

김용섭 |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입사 4년 차면 대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회사에서 사원 혹은 대리급이다. 열심히 실무를 하는 위치이지 조직에서 힘을 가진 위치는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알던 관성적 이해에선 그렇다. 하지만 이젠 좀 달리 봐야 한다. 연초부터 대기업의 성과급 불공정 문제가 제기되었고, 사무직 중심의 새로운 노조가 잇달아 설립되고 있다. 기존 대기업 조직 문화에선 상상치 못했던 일들이 갑작스레 벌어지고 있고, 그 중심에 입사 4년 차가 있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 성과급 불만에 대해 시이오(CEO)를 비롯한 임직원 2만8천명 모두에게 구체적 문제 제기와 함께 산정 방식을 공개하라는 메일을 발송한 것은 입사 4년 차, 엄밀히 만 3년도 안 된 직원이었다. 기성세대라면 ‘어디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입사원에 가까운 직원이 감히'라며 메일의 문제 제기 내용보다 전사 메일로 모두에게 불만을 제기한 방식부터 거슬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20·30대 직원들이 입사 4년 차의 도발에 동조했다. 경영진으로서도 이를 간과할 수가 없는 게, 조직에서 20·30대의 비중이 꽤 높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입사 4년 차의 문제 제기에 틀린 말이 없었다는 점이다.

상명하복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달리 옳고 그름에 대해 정확히 따지고 싶어 한다. 성과급 불만 문제는 에스케이하이닉스를 비롯해 삼성전자, 엘지(LG)전자, 현대차 등 주요 대기업으로 다 번져갔고, 20·30대가 주도하는 새로운 노조의 탄생을 예고했다. 그 신호탄 중 하나가 지난달 설립된 엘지전자 사무직 노조다. 이미 엘지전자에는 60년 가까이 된 노조가 있지만, 사무직을 위한 노조는 처음이다. 노조 설립을 주도하고 초대 노조위원장을 맡은 이는 입사 4년 차다. 현대차그룹도 사무직 노조가 설립을 앞두고 있다. 여기서도 사원, 대리급이 주도한다. 앞으로 더 많은 대기업에서 사무직 노조가 만들어질 것이고,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저년차들이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이들을 과거 노조처럼 봐선 곤란하다. 이들은 노동운동은커녕 사회변혁에 관심 있는 게 아니다. 단지 공정하고 정당하게 평가받고 일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연차가 쌓이면 유리한 호봉제 같은 과거의 방식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일은 나이가 아니라 실력으로 하는 것이니까.

요즘은 갑에게 대항하는 을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광고대행사에 광고주는 갑의 위치다. 그런데 대행사 ‘스튜디오좋’은 광고주를 저격하는 글을 공개적으로 올렸다.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휩쓴 빙그레의 빙그레우스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행 대행한 곳이 스튜디오좋인데, 언론 인터뷰에서 빙그레 담당자가 기획을 빙그레가 했다고 한 것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스튜디오좋은 설립한 지 5년이 채 안 되었다. 공동창업자는 30대 초반이다. 그동안 광고대행사로선 암묵적으로 광고주에게 공을 돌리곤 했는데(엄밀히 광고주가 공을 가로채는 것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는 을이었기에) 오랜 관행에 대해 정면 반발한 것이다. 갑에게 반기를 든 을이 손해를 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을의 문제 제기가 틀리지 않기에, 갑도 과거의 암묵적 관행을 과감히 버리려 한다. 갑이라도 갑질하면 오히려 역공에 의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시대다.

세상은 계속 바뀌고 있고, 20·30대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 보궐선거 결과를 두고서도 20·30대에 대한 정치권의 재해석이 활발하던데, 그들의 변화가 갑자기 온 게 아니다. 계속 목소리를 내왔지만 그동안 듣는 척만 하고 외면했다. 지금도 자기식대로 왜곡해 해석하고 있다. 결국 20·30대가 스스로를 정치세력화할 수밖에 없다. 입사 4년 차들의 반란이 한국 사회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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