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정당사에서 당원의 구실과 비중이 커진 시기는 19세기 말이다. 보통선거권 확립 뒤 명사 중심의 엘리트 정당은 퇴조하고 계급과 사회집단에 기반한 ‘대중정당’이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민당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대중정당은 전체 국민을 상대로 지지를 구하는 ‘포괄정당’으로 변해갔다. 산업 고도화와 계급 구조의 분화가 가져온 유권자 지형의 변화 때문이었다. 당의 운영과 정치활동에서 당원의 역할은 작아지는 대신 지도자·전문가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4·7 재보궐선거 참패 뒤 더불어민주당이 ‘민심과 당심의 괴리’ 문제에 맞닥뜨렸다. 재보선에서 확인된 민심은 집권여당에 ‘먹고사는 민생 이슈에서 유능함을 보여달라’는 것인데, 당 주류와 강성 권리당원들은 더 철저한 검찰·언론 개혁이 촛불시민의 지지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재보선 직후 분출된 성찰과 쇄신 요구는 ‘문자폭탄’ 등 강성 당원들의 조직적 움직임에 갈수록 움츠러드는 분위기다.
‘정당이 얼마나 민주적이어야 하느냐’는 현대 정당론의 핵심 주제다. 극단적 당원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쪽에선 ‘당내 민주주의 없이 당 밖의 민주주의도 없다’는 견해를 고수한다. 그러나 사르토리나 샤츠슈나이더 같은 현실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정당 간 상호경쟁’이 만들어내는 정치적 결과물로 본다.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에 중요한 것은 ‘정당이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이지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는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내부가 민주적이면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는 커진다. 문제는 내부 민주주의가 잘 작동한다고 해서 그 정당의 경쟁력까지 함께 올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오늘날 당내 민주주의가 강조되는 곳은 대체로 사회운동조직에 뿌리를 둔 운동정당이나, 규모가 작은 계급·이념정당이다. 한국에선 녹색당, 정의당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에겐 집권이 아닌 정치적 영향력 확대가 최우선 관심사다.
그러나 집권이 목표인 정당이라면 다수 유권자의 선호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흐름에 신속하게 반응하는 것이 필수다. 공직 선거에서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얻으려면 민심에 좌표를 맞추는 게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집권을 노리는 거대정당에서도 당심과 당원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들은 항상 있었다. 당직·공직을 둘러싼 내부 경쟁에서 목소리 큰 당원 집단의 지원이 절실한 신참자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짙다. 실제로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고 의정활동 성과 역시 뚜렷하지 않은 초선의원이나 원외인사가 당의 최고위원 선거나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에서 당원들의 몰표를 받아 깜짝 선출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당원 민주주의라는 대의의 장막 뒤에는 개인의 집요한 권력의지가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이세영 논설위원
mon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