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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채윤의 비온 뒤 무지개] 목사님은 경찰에 안 잡혀가요

등록 2021-04-22 14:17수정 2021-04-23 10:18

한채윤 ㅣ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오천만 국민 중에 모르는 사람이 한명도 없도록 천번만번이라도 반복해서 외치고픈 말이 있어요. “목사님은 안 잡혀가요! 동성애가 죄라고 아무리 설교해도 절대 안 잡혀가요!”라고. 유언비어 때문에, 국민 모두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좋은 법인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는 현실이 너무 답답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제가 이해하기 쉽게 핵심만 추려드릴게요. 읽으신 뒤 꼭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주세요. “야, 그거 아니야”라고.

먼저, 목사가 교회에서 “동성애는 죄”라고 설교를 아무리 많이 해도 안 잡혀가요. 목사뿐만 아니라 그 옆에서 장로, 전도사, 평신도 그 누구든 같이 “옳소”라고 외쳐도 안 잡혀가요. 차별금지법은 관공서, 교육기관, 기업이나 상점 같은 곳에서만 적용되니까요. 지금까지 살면서 큰 병원이나 경찰서, 검찰청, 시청과 같은 곳에서 내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나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차별받을까 봐 걱정되신 적 없으세요? 바로 이런 때를 위한 법이 차별금지법이에요.

그런데 자꾸 동성애 반대한다고 입도 뻥긋 못 하게 하는, 표현의 자유를 없애는 독재국가를 만드는 법이라고 왜곡하는 이들이 있어요. 속지 마세요. 누구든 ‘나는 동성애가 싫다’고 생각할 수는 있어요. 생각 자체가 금지 대상은 아니죠. 하지만 몸이 아파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나는 동성애를 싫어하니 동성애자 치료를 거부해’라고 하는 일이 벌어지면 안 되잖아요. 누구든 아플 때 치료는 받을 수 있어야지요. 소문난 명의가 있어서 찾아갔더니 자신이 믿는 종교로 개종해야만 치료해준다고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요. 차별을 내버려두면 이렇게 목숨까지 잃는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사회가 나서서 적어도 어떤 것은 하지 말자고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에요. 멋진 일이죠?

그리고 강조드릴 것이 또 있어요. 차별금지법은 형법이 아니랍니다. 차별받았다고 112에 신고하는 게 아니에요. 경찰차가 출동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잡혀간다”는 표현을 써서 차별금지법을 무시무시한 법처럼 보이게 해요. 차별 피해를 당한 사람은 경찰서가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로 가야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엄격하게 그 신고 내용이 맞는지 조사해서 차별인지 아닌지를 밝힐 거예요. 정말 부당하게 직장 내 성희롱, 승진 누락의 불이익, 왕따 등의 집단 괴롭힘 등을 당했다면 그런 차별 행위를 시정하라고 회사의 책임자에게 권고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차별을 계속하려는 분들이 있나 봐요. 법 제정을 막으려고 계속 헛소문을 내요. 근래엔 아동학대와 디지털 성범죄가 이슈가 되니 이에 편승해,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소아성애자와 성범죄가 늘어난다고도 해요.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할 수 없게 하는 법이니 성범죄자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고용하게 하는 악법이라는 거죠. 아닙니다. 성범죄 전력이 있으면 특정 직종에 취업할 수 없는 법이 이미 있어서, 이에 따른 고용 거부는 차별이 아니에요.

이뿐 아니라, 이 법이 만들어지면 학교에 불경이나 성경도 못 가져간다, 남자가 여자 목욕탕에 마음대로 들락날락한다, 동성애자인 자녀를 야단치면 부모가 양육권을 박탈당한다, 에이즈가 늘어난다, 수간과 일부다처제가 인정되고, 동성애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성애자들이 역차별받는다 등의 이야기도 들어보셨나요? 어떤가요. 딱 들어봐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싶으시죠? 맞습니다. 다 사람들이 겁먹도록 과장하고 왜곡하는 거예요. 차별금지법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 블로그나 웹 카페, 에스엔에스(SNS) 등을 통해 퍼지는 유언비어를 들으신다면 말해주세요. “그거 다 거짓이잖아” 하고.

차별은 편견과 무지, 혐오와 거짓으로 자라죠. 이젠 맞서야 해요. 올해는 꼭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서 2022년에는 차별이 조금이나마 줄어든 세상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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