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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숨&결] ‘이남자’와 잊혀진 45% / 이주희

등록 2021-04-26 14:54수정 2021-04-27 02:39

이주희 ㅣ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보궐선거 20대 남성 유권자의 투표 성향으로 인한 여파가 군 가산점과 여성 징병제, 여성 할당제 논란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군 가산점제를 주장하며 여성 할당제에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위헌 판정을 받아 소멸된 군 가산점제는 이십대가 신봉하는 능력주의 원칙에 위반된다. 그래서 여성 할당제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교대에서 남학생을 위해 어느 한 성이 75%를 초과할 수 없는 선발제도를 운영해온 것에 대해서는 왜 반대하지 않는가? 굳이 이를 부활시키고자 한다면 이 원칙의 폐기를 과거의 차별로 인한 피해 보상의 영역까지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데 찬성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그러한 사례이다. 제대군인에 대한 혜택은 흑인의 시민권 투쟁을 계기로 소수자집단에게 할당제와 같은 적극적인 조치를 도입하는 추동력이 되었다. 단, 미국의 군 가산점은 군대만 가면 주었던 것이 아니라 연방의회가 인정하는 전쟁에 현역으로 참여하는 등 엄격한 요건하에 부과되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성 징병제는 어떠한가. 애초에 신체적 능력 등을 운운하며 여성을 징집하지 않은 것은 국가였다. 수십년 전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가 여성 징집 배제의 사유로 제시한 이유는 더욱 노골적이다. 엄마가 전투에 나가 싸우는 동안 아빠가 가사를 돌보는 것이 통상적인 가정생활에 큰 충격을 주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남성의 병역 의무에 준하는 사례로 여성의 가사노동이 자주 언급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통계청이 밝힌 2019년 맞벌이 부부의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여성이 187분, 남성이 54분이었다. 이 부부가 20년만 함께 살아도 남성이 군대에서 지낸 시간보다 여성이 온전히 가사노동에 투입한 시간이 훨씬 더 길어진다. 그러나 이 두 유사한 희생은 조직에서 전혀 다르게 평가되며 다르게 보상된다.

군필 남성의 높은 임금 프리미엄을 고려할 때 여성의 병역 참여는 성별임금격차 최상위권 국가의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향후 긍정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단, 가사노동에 대한 성 평등한 분담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이후에 진행되어야 여성에게 이중의 피해를 주지 않게 된다. 지금이 그 시기는 아닌 듯하다.

우리나라 여성 할당제의 좀 더 정확한 명칭은 목표제로, 보통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더구나 이 제도가 내각 수준에서만 보여주기식으로 실시되면 마치 성차별이 해소된 양 잘못된 착시 효과까지 만들어낸다. 차별적 분리채용으로 여성이 과다대표, 아니 거의 전부인 일자리의 만성적 저임금과 고용불안에는 왜 이렇게 무관심한가? 문제는 유리천장지수 최하위권 국가에서 당연히 해야 할 여성 할당제를 했다는 게 아니라 그 외의 일들을 너무 못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의도로 선거 때마다 젠더나 세대 갈등만 부추기는 것일까. 가난한 20대를 더 크게 지배하는 현실은 극단적인 부와 소득의 불평등, 절차적 공정의 위장하에 지속되고 있는 학벌과 학력의 대물림, 제대로 된 일자리의 부족, 그래서 결혼도, 아이도 꿈꾸지 못하는 삶인데도 말이다. 가난한 20대는 보통 가난한 50~60대 부모와 삶을 함께한다. 강남의 고가 아파트촌 남녀노소는 한 당에 몰표를 주며 계급투표를 할 수 있었지만 가난한 남녀노소는 그런 계급투표를 할 수 있는 정당이 없다. 보궐선거면 선거권자의 반쯤은 투표하지 않아도 좋은가? 45% 가까이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현재의 투표 행위가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쪽이 불만이 있는 듯하니 다른 쪽이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을 뺏어서 주려고 하거나, 아니면 이 집단이 힘들어하니 괴로움을 덜 호소하는 듯 보이는 저 집단도 힘들게 하자는 단세포적 마인드로는 그 다른 쪽의 표만 잃을 것이다. 정치에 실망하여 투표하지 못한 여성과 남성, 청년과 중고령층의 마음은 과연 누가 헤아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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