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스>는 이달 초, 저렴한 비용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코로나19 백신의 임상시험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이미 임상시험을 하고 있거나 곧 할 예정인 나라는 베트남, 타이, 브라질, 멕시코 등 4개국이다. 이 백신은 화이자, 모더나 등 특수한 생산 기술과 시설이 필요한 백신과 달리, 기존 독감 백신과 똑같이 달걀을 이용해 만든다. 독감 백신을 만들 수만 있으면 어느 나라나 이 백신을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적으로 백신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 백신이 제품화에 성공한다면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이 백신은 미국의 텍사스대 분자생물학과 제이슨 매클렐런 교수 연구팀과 마운트 시나이 아이칸 의대 연구팀이 공동으로 개발했는데, 연구팀은 미국의 비영리단체 ‘보건 적정기술 프로그램’(PATH)의 주선으로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들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해당 국가의 기업과 연구소가 로열티 부담 없이 백신을 연구·제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 백신 아이디어는 ‘적정기술’을 보건의료 분야에 적용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적정기술은 주로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적용되는 기술을 뜻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1911~1977)가 1965년 유네스코 회의에서 처음 제시한 ‘중간 기술’에서 발전한 개념이다.
슈마허는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개발도상국의 토착 기술과 선진국의 자본집약적인 기술 사이의 간극은 상호 전환이 불가능할 정도로 넓다. 가장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도와주려면 둘 사이의 중간에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적정기술은 ‘대안 기술’,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 ‘국경 없는 과학기술’ 등으로도 불린다. 상수도 시설이 취약한 지역 주민들이 오염된 물을 걸러 마실 수 있도록 필터를 내장한 ‘생명 빨대’(휴대용 정수 빨대), 오토바이 배터리를 활용해 백신의 온도를 유지하는 ‘백신 냉장고’ 등이 그 예다.
‘적정기술 백신’ 실험이 이른 시일 안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러나 초국적 제약사들이 ‘백신 보급을 위해 특허권을 풀어달라’는 요구에 귀를 막고 있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시도임에 틀림없다.
이종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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