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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동포’들을 차별하는 나라

등록 2021-04-27 16:36수정 2021-04-28 02:35

‘모국’에 귀환해서 이렇게 죄도 없이 고문실로 끌려갔던 재일 동포들이 감당했을 고통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데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는 신자유주의 시대, 그리고 미-중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국내 여론이 미국으로 경도되는 지정학적 갈등의 시대에 또 다른 ‘국민적 타자’가 된 것은 저임금 지역인 연변에서 온 중국 국적 동포들이다. 가장 심한 차별을 일상적으로 겪는 소수자 집단으로서 장애인과 성소수자, 새터민(탈북 주민) 등과 함께 바로 ‘조선족’으로 자주 불리는 중국 동포들이 부상한 것이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20여년 전에 나는 국내의 한 사립대학에서 러시아어 강사로 일했다. 러어과에서 나는 유일한 외국인이었지만, 같은 대학의 영문과에는 원어민 교수가 10여명 있었다. 그들 중에 흑인은 한명도 없었고, 내가 알고 있는 한 그 당시 다른 대학에도 흑인 출신의 원어민 교수는 거의 없었다.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 패턴을, 한국 대학가도 그대로 배운 게 아니었나 싶다. 원어민 교수의 대다수는 중산층 백인이었으며 몇명은 2세 재미 동포 출신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의 영어는, 백인 원어민 교수와 하등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한데 그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그들에게 ‘부모의 고향’인 한국에서 취직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대학이나 학원에서 재미 동포들이 백인 원어민에 비해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곤 했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에서 가장 차별을 받는 외국인들 범주에 재외 동포들이 속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만 해도 ‘민족’ 같은 용어들은 널리 쓰이고 있었지만, 정작 해외 한민족들이야말로 실은 국내에서 찬밥 신세가 되기 쉬웠던 것이다.

근대에 접어들어 한반도는 ‘이산’의 땅이 됐다. 식민지 시대의 억압, 그리고 그 뒤의 극심한 가난은 동아시아에서 본국 총인구에 비해 가장 많은 디아스포라를 낳았다. 해외 한인들은 한반도 총인구의 약 10%에 달하는데, 이는 중국 총인구에 대한 해외 화교의 비율이나 일본 총인구에 대한 해외 일인(닛케이진)의 비율(각각 약 3%) 내지 해외에서 거주하는 베트남인의 비율(약 4.4%)보다 훨씬 높다. 동아시아에서는 한인들이야말로 ‘이산의 민족’이 됐다. 그런데 ‘이산된 한인’에 대한 한반도 두 국가의 태도는 늘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한편으로 경제 차원에서 절실히 필요한 ‘자원’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남북한의 총동원식 병영 질서에 들어맞지 않는 ‘이질 분자’들이었다. 그래서 한반도 두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그들이 입은 피해도 만만찮았다.

6·25 전쟁 이후에 노동력과 외화를 절실히 필요로 했던 북한은 1959년부터 재일 조선인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9만3300명 넘는 재일 동포가 북한으로 갔다. 한편으로 그들에게 북송은 일본 사회 안에서의 태심한 차별을 벗어나는 길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질적 사회에서 살다가 온 그들을 제대로 수용할 정도로 북한 사회의 관용 지수는 높지 않았다. 적응에 실패한 사례가 잇따르고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토로하는 사람들에게는 탄압이 가해졌다. 한데 같은 시기의 남한에서도 재일 동포들이 겪은 수난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근본적 이유는 똑같았다. 훨씬 더 자유로운 이질적 세계에서 살다 온 사람들을, 하나의 커다란 병영 같은 남한 사회가 제대로 포용할 리 없었다. 동포 기업인 롯데그룹 같은 회사들이 1960~70년대에 한국에 진출했을 때에는 박정희 정권의 전폭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수많은 재일 동포들의 ‘모국 귀환’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1970~80년대 모국 유학생 등 한국 체류 재일 동포들이 연루된 각종 ‘간첩 사건’은 319건이나 발생했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고문에 의한 자백 강요 같은 조작된 사건이었다. ‘모국’에 귀환해서 이렇게 죄도 없이 고문실로 끌려갔던 재일 동포들이 감당했을 고통은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다.

냉전이 끝난 뒤에는 ‘총련계와 연계될 수도 있다’는 재일 동포들을 노리는 의심의 눈초리는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이번 정권 집권기에는 한국 국적자가 아닌 조선적 재일 동포들의 모국 방문도 가능해지는 등 여러가지 진척이 있었다. 한데 ‘돈’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는 신자유주의 시대, 그리고 미-중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국내 여론이 미국으로 경도되는 지정학적 갈등의 시대에 또 다른 ‘국민적 타자’가 된 것은 저임금 지역인 연변에서 온 중국 국적 동포들이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가장 심한 차별을 일상적으로 겪는 소수자 집단으로서 장애인과 성소수자, 새터민(탈북 주민) 등과 함께 바로 ‘조선족’으로 자주 불리는 중국 동포들이 부상한 것이다.

1970~80년대의 재일 동포를 둘러싼 시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중국 동포를 응시하는 한국 국가와 상당수 주민들의 시선은 이중적이며 자기모순적이다. 한편으로는, 1970~80년대의 한국 경제에 재일 동포들의 ‘재력’이 필요했듯이, 오늘날 한국 경제에 중국 동포들의 ‘노동력’은 필수적이다. 귀화자 등까지 포함하면 현재 한국에서 체류하는 중국 동포는 약 80만명, 즉 중국 내 조선족 커뮤니티 전체의 3분의 1 이상이다. 이 정도로 많은 중국 동포들이 한국에 와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회피하려는 직종에서 그들의 노동력이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반공 광기의 시대에 모국에 와 있는 재일 동포들이 매우 쉽게 ‘조총련계 연루자’로 몰렸듯이, 많은 한국인들은 조선족을 ‘동맹국 미국’의 적으로 인식되는 중국이라는 ‘국가’의 연장이자 일부분으로 보려 한다. 결국 신냉전의 두 축 사이에 ‘낀’ 중간적 존재가 된 조선족은 극도로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중국 안에서도 비교적 가난한 지방인 동북 3성 출신인 그들은 한국을 경제적 생존의 차원에서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다민족 국가 중국의 소수자로서 당연히 ‘인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중국에 대한 귀속의식을 드러내야 하는 입장이다. ‘민족’과 ‘국가’가 동일시되는 나라에서 자라난 한국인들로서는 제국형 국가에서 하나의 소수민족이 정치·문화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벌여야 할 고투란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보이지 않아 문제다.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에 오히려 노골적 차별이 판친다. 이 차별은 문화적 측면과 계급적 측면을 겸비한다. 획일주의 성향이 강한 병영형 국가인 한국에서 한국적 ‘표준’과 다른 조선족의 언어나 일상적 행동거지 등이 이질시되는 한편, 특히 한국 안에서도 주로 저임금 하층 노동계급을 연상시키는 흡연이나 고성방가 등은 멸시적 응시의 대상이 된다. 결국 ‘국가’와 ‘개인’ 내지 ‘소수자 집단’ 사이 구별의 부족, ‘차이’를 받아들이려는 자세의 부재, 그리고 계급적 차별의 패턴 등 한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들은 국내에 와 있는 해외 한인들에 대한 혐오 정서를 낳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들은 애초에 한국인들부터 불행하게 만들어왔던 사회적 병폐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노자 ㅣ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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