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준ㅣ전환사회연구소 기획위원
2010년대에 전세계를 뒤흔든 정치 사조는 포퓰리즘, 그것도 극우 포퓰리즘이었다. 그러나 2020년대에 접어든 지금, 극우 포퓰리즘의 전진은 일단 주춤한 상태다. 비록 프랑스 대선을 앞두고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 여론조사 1, 2위를 다투고 있다지만, 그래도 미국에 트럼프 정부가 버티고 있던 때에 비하면 기세가 예전만 못하다.
극우 포퓰리즘 물결이 수그러든 데는 코로나19 대유행이 큰 영향을 끼쳤다. 과학에 바탕을 두고 연대의 정신으로 헤쳐 나가야 할 사태에 거짓과 혐오로 대응하는 유사 파시스트들의 무능과 위험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정치 무대에서 극우 포퓰리즘에 반격을 가한 대항 세력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들은 ‘녹색’이거나 ‘좌파’, 혹은 ‘녹색 좌파’ 세력이었다.
미국에서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비롯한 민주적 사회주의 흐름이 민주당의 알맹이 없는 선거운동에 그나마 활력을 불어넣어 정권 교체에 기여했다. 이들은 특히 기후위기 대응과 신자유주의 경제 구조의 변혁을 한데 아우른 그린뉴딜 프로그램으로 여론전의 우위를 이끌어냈다.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생태 전환을 주창한 녹색당들이 기후 재난과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새삼 저력을 보이고 있다. 독일 녹색당은 지지율이 계속 사회민주당을 따돌려 올해 9월 총선에서 최초의 녹색당 총리를 배출할 가능성까지 있다. 옆 나라 프랑스에서는 대봉쇄로 어수선한 가운데에 치러진 작년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시장 후보들이 약진했다.
이들보다 더 왼쪽에 있는 급진좌파에서도 이제는 ‘적색’만이 아니라 ‘녹색’이 상징색으로 떠오르고 있다. 프랑스의 좌파 대선 주자 중 1위를 달리는 장뤼크 멜랑숑은 기존 제5공화국 체제를 넘어서는 ‘제6공화국’ 개헌을 주창하면서 근본이념으로 생태사회주의를 내세운다. 스페인의 우니다스 포데모스 같은 세력도 그린뉴딜과 비슷한 생태 전환 프로그램을 통해 코로나19 이후의 새 질서를 열어나가겠다고 한다.
이런 여러 흐름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도 있지만, 어쨌든 ‘녹색’과 ‘좌파’가 교차하는 정치적 지향으로 수렴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즉, 지금 극우 포퓰리즘에 가장 효과적으로 맞서는 힘은 녹색과 좌파가 교차하는 곳에서 나오고 있다. 유사 파시즘의 숙적은 리버럴도 아니고, 전통적 사회민주주의자들도 아니다. 녹색 좌파다.
물론 ‘녹색 좌파’라 아우를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는 과거 좌파만큼이나 다양하고 서로 충돌하는 사조들이 공존한다. 많은 녹색당의 주류인 생태개혁주의자들이 있는가 하면, 급진적인 생태사회주의자나 아나키스트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 기후위기가 가속화할수록 자본주의의 핵심 구조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각성과 요청이 커질 것이며, 이에 대한 진지한 도전은 다른 어떤 정치세력보다 녹색 좌파에서 대두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미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새로운 사회운동들에서는, 겉으로는 전환을 말하면서도 결코 이윤을 포기하지 못하는 거대 자본과 그 정치적 동맹자들이야말로 파국을 낳는 주범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화답하려면 녹색 좌파는 자본주의의 핵심 구조를 바꾼다는, 오랫동안 망각했던 과제를 다시 꺼내 들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기후위기 대응을 불평등 해결과 결합하겠다는 그린뉴딜의 애초 목표도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며, 극우 포퓰리즘이라는 막강한 경쟁자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나 몇몇 유럽 국가들만의 현실이 아니다. 지구 전체를 동시에 가로지르는 정치 지형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한국의 녹색 좌파는 누구인가? 과연 존재는 하는가? 진보정당은, 노동운동은, 다른 사회운동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리버럴 정부의 실패, ‘촛불’ 개혁의 좌절에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대안은, 우리의 경우에도 역시 녹색 좌파의 빠른 결집과 과감한 전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