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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뉴노멀-뉴 아메리카] 방미와 로비 / 유혜영

등록 2021-05-02 14:54수정 2021-05-03 02:08

유혜영 ㅣ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

현실적으로 대통령이나 총리의 미국 방문은 한 나라의 외교 활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정이다.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면 새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 각국은 외교력을 총동원해 물밑 경쟁을 벌인다.

미국 대통령은 외교정책에 있어 국내 정책보다 상대적으로 다른 헌법기관의 견제를 덜 받는다. 대통령의 정책 기조가 어떤 나라 정상을 먼저 초청할지 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바로 그 대통령의 외교정책 기조에도 물밑 외교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래서 외국 정부의 대미 로비가 중요해진다.

미국에서는 로비가 합법이다. 이익집단이 돈을 주고 제3자(로비회사)에게 자기 대신 정치인과 공무원을 만나 정보를 얻거나 전달해달라고 해도 된다. 외교정책에서도 로비가 큰 역할을 한다.

지난해 11월3일 대선 직후, 선거 결과의 향방이 아직 묘연한 와중에 민주당과 연결된 로비스트들은 바이든 시대의 로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해 온라인 설명회를 열었다. 설명회에는 워싱턴에 있는 외국 대사관 직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뒤 바이든의 참모 출신이나 바이든 행정부와 ‘끈이 있는’ 인사를 로비스트로 고용한 회사들은 전세계 기업과 대사관, 외국 정부로부터 로비 계약 요청이 쇄도하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난 4월16일 스가 일본 총리는 백악관을 방문하면서 일본은 바이든 행정부의 첫 정상외교국이라는 타이틀을 따냈다. 일본은 2020년에만 무려 30개가 넘는 로비회사를 고용하고 45억원을 썼다. 그해 각국 정부 가운데 대미 로비에 쓴 돈이 가장 많다. 그래도 원하는 바를 어느 정도 이룬 셈이니 쓴 돈이 아깝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하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다. 외국 정상으로서는 스가 총리에 이어 두번째가 될 것이라는데, 순서보다 중요한 건 어떤 의제를 얼마나 잘 준비해 가느냐이다. 그러려면 미국 정부가 뭘 원하는지 파악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논리와 전략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 외교가와 소통하고 필요한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도 로비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팀은 알다시피 전임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무척 회의적이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도 실용적 접근을 강조하면서 외교의 가능성을 열어두었지만 트럼프식의 일괄타결과 같은 접근은 배제한다는 큰 틀에서의 구상을 최근 발표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 새로운 접근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미지수다. 한국 정부와 논의하면서 대북정책 재검토 과정을 마쳤다고 말했지만 미국이 구체적인 대북정책을 하나씩 내놓을 때까지 기다려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식은 안 된다. 바이든 외교팀이 대북정책 수립에 있어서 어떤 정보를 기반으로 누구 말을 귀담아듣고 있는지를 선제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우리 외교부의 노력뿐만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정책결정자나 국무부에서 대북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과 잘 연결된 로비스트를 고용해서 진행 상황을 파악하는 데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2019년 12개의 로비회사를 고용해 30억원 넘는 돈을 로비에 썼다. 2020년에는 무슨 일인지 고용한 로비회사가 절반으로, 비용도 15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해 로비 활동 내역을 살펴봐도 정치인이나 국무부 관료를 만나 적극적으로 정보를 얻어내는 작업보다는 무역규제와 관련한 법률 조언을 받는 등 소극적인 활동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일본 정부는 로비회사를 통해 미국 의회나 행정부 정책결정자들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은 물론 일본 대사관의 소셜미디어 전략에 대한 조언을 받고자 홍보 전문 회사를 따로 고용하기도 했다.

국제관계에서, 특히 다른 언어를 쓰는 국가 간의 의사소통에서는 의도치 않은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는 효율적이던 메시지가 바이든 행정부에선 오해를 살 수도 있다. 많은 외국 정부가 홍보·언론 관계에 전문성이 있는 로비회사들을 고용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많은 돈을 대미 로비에 써왔다. 대북정책을 좌우할 미국의 새 행정부와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잘 쓰인다면 로비자금을 낭비라고만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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