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 이안 ㅣ 시인·<동시마중> 편집위원
지난해 봄엔 정말 할 일이 없었다. 새 학기에 맞추어 일곱번째 책을 막 출간한 터라 괜스럽게 기대가 컸다. 어린이 독자들 앞에서 새 동시집에 실린 작품을 이야기하는 상상만으로 출간 두어달 전부터 살짝살짝 마음이 부풀었다. 어떤 계기로 쓰게 됐는지, 어째서 이런 형식이 나오게 됐는지, 음악과 그림과 뜻이 조화를 이룬 시와 음악이 전면화되면서 그림과 뜻이 후퇴한 시는 어떻게 다른지 등을 풍성한 예시로써 재미나게 들려주리라. 어린이들은 분명 눈을 반짝이며 재밌어할 거야. 꽃기린 꽃잎은 미리미리 잘 말려놓고, 미선나무 리본도 틈나는 대로 몇개씩 만들어놓아야지. 5년 만의 신작 아닌가.
그런데 느닷없이 코로나19가 왔다. 예정됐던 강의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2학기로 연기되었다. 가만있다가는 된통 당할 판국이었다. 봄여름 먹고살 밥이나마 미리 벌어놓았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어쩔 뻔했나. 세상은 하루아침에 다른 세상이었다. 그 이후의 삶이야 다들 누구라도 이전과 확연히 다른 것이 되었겠지만 나 같은 강연 생활자들은 먹고삶 자체가 알뜰히 몰수되는 시간의 시작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지역으로 돌아다닐 일이 거의 없었으므로 하고많은 날 엉덩이에 둥그런 방석 하나 깔고 앉아 마당 곳곳 돋아난 풀이나 꼼꼼하게 달려들어 뽑을 뿐이었다. ‘올해는 뻐꾸기 소리까지 유난하네. 뻐꾸기가 이렇게 많았나’ 하다가 나돌기에 바빠 해마다 찾아와 울었을 뻐꾸기를 제대로 마중하지 못했음을 떠올렸다. 뻐꾸기 아니고 내가, ‘지금, 여기’에 없었던 거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리라 했던 시를 뻐꾸기에게나 들려주는 날이 많았다.
“어제도 뻐꾹/ 오늘도 뻐꾹/ 말끝마다/ 뻐꾹 뻐꾹// 뻐꾹요 뻐꾹이오/ 뻐꾹입니다/ 존댓말 쓰는 꼴을/ 한 번도 못 봤다니까/ 요”(‘뻐꾸기’ 전문).
“마지막 한 글자 “요”를 윗줄에서 아랫줄로 떨어뜨려놓지 않았다면 시의 재미가 훨씬 덜했을 거예요. 여러분도 그럴 때 있잖아요.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넌 왜 존댓말 쓰지 않고 반말 쓰니?” 그러면 “내가 언제/ 요” 이렇게 말한 경험.” 줄 선 풀을 어린이들이라 생각하고 혼자서 중얼중얼, 키득키득 웃기도 하면서.
거의 박피 수준으로 마당의 풀을 정리하고 나자, 그러는 사이 또 마당가에 닭장을 하나 지어 3주차 백봉오골계 병아리 열여섯 마리를 들여놓은 일마저 겹치긴 하였지만 아니나 다를까 덜컥 허리에 병이 들고 말았다. 겪어보지 못한 시절에 안 하던 일을 지치지도 않고 하면 당하게 되는 일이란 바로 이런 것일 테다. 이리하여 별별 불길한 예감이 등에도 달라붙고 천장에도 빤히 붙어 나를 아래위에서 괴롭히기 시작했다. 큰 병원을 예약하는 한편으로 인터넷에서 디스크 개선 스트레칭 방법을 찾아 바닥을 지고 끙끙거렸다. 그러구러 한달 가까이 지날 즈음 그냥저냥 다닐 만하게 병이 물러나주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현실은 점점 토착화를 염려하는 목소리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이전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이후의 삶에 나를 완전히 리부트(reboot)할 것.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전망을 부지런히 참고하고 비대면 체제에서의 몇가지 필수적인 기술을 세팅했다. 그러는 사이 봄 석달이 지났다.
5월31일 오후 2시, 이제까지 없던 형식으로 독자를 만났다. 새 작품집의 주요 현장인 충주시 호암지 둑방 옆 느티나무 아래로 사인받을 책을 한권 이상 준비해 모이기. 예약제가 아니었기에 누가, 몇명이 오는지조차 모르는 무작정의 설렘이었다. ‘지속가능한 독자+작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모두 일곱차례, 매번 기대 이상의 감동으로 부풀어 올랐지만, 올봄엔 5인 이상 집합 금지에 묶여 한차례도 열지 못했다. 새 책에 대한 독자+작가 사이의 예의를 차리고, 그나마 밀린 그리움을 벌충해주는 좋은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올해도 뻐꾸기 울음소리를 아주 많이 듣게 생겼다. 풀은 가만히 놓아 기르기로 했다. 일년 새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를 내가, 일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