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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골든글로브, 그 유서 깊은 타락사

등록 2021-05-16 14:03수정 2021-05-17 02:37

[유레카]

“자위 행위를 벌이는 90명의 볼품없는 인간들.” 배우 게리 올드먼이 2014년 어느 인터뷰에서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에 퍼부은 독설이다. “당신들과 셀카를 찍을 요량으로 주는 금속 조각(트로피).” 2016년 이 상 시상식에서 배우 리키 저베이스가 다른 배우들을 웃기려고 던진 조롱 조의 농담이다. 그는 무려 이 행사의 사회자였다.(<엘에이 타임스>, 2021년 2월25일)

아카데미상에 버금간다던 골든글로브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사실은 최근 미국 <엔비시>(NBC) 방송이 내년 시상식을 중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졌다. <엔비시>는 이 협회의 추문이 쉼 없이 터지자 결국 중계 수익을 포기했다. 협회가 지난 2년 동안 회원들에게 규정에 없는 200만달러(약 22억2천만원)를 나눠 주고, 2019년 영화 제작사 패러마운트의 협찬으로 프랑스에 호화 여행을 보낸 건 일례일 뿐이다. 지난 20년간 흑인 회원을 한명도 들이지 않아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인 것도 빙산의 일각이다.

사실 이 비영리단체의 타락은 유서 깊다. 일찍이 1958년, 협회 회장이 특정 홍보회사의 개입으로 여러명의 수상자가 뽑혔다고 폭로하며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1982년에는 신인 여배우상 수상자의 백만장자 남편한테서 카지노 호텔의 향응과 거액의 광고비를 제공받았다. 이 ‘신인’ 여배우는 데뷔 18년차였다. 2011년에는 영화 배급사 소니와 벌인 비슷한 행각이 들통나기도 했다.

협회는 194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외신기자들이 설립했다. 회원 수는 90명 이내로 엄격히 제한돼 있다. 극히 폐쇄적인 회원제 덕에 미국 영화계에 대한 독점적 접근권과 강한 영향력을 누려왔다. 그런데 협회에 독설을 날린 올드먼은 2018년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2020년 시상식 사회도 저베이스가 맡았다. 협회와 할리우드는 각자의 잇속을 놓고 대단히 기이하게 줄타기를 해온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드디어 그 줄이 끊어지기 직전에 놓였다. 스칼릿 조핸슨, 톰 크루즈 같은 배우들이 트로피까지 반납하며 보이콧을 선언하자, 협회의 돈줄인 할리우드의 큰손들도 계산기를 두드린 뒤 줄줄이 ‘손절’에 나섰다. 긴 시간 자주 아찔했던 줄타기놀음도 끝나가는 듯하다.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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