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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밥 잘 먹는 군대

등록 2021-05-17 17:30수정 2021-05-18 02:08

[숨&결]  방혜린 ㅣ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

군대의 참모진은 크게 인사, 정보, 작전, 군수 네가지로 나뉜다. 우리가 통상 군대에서 ‘출셋길’이라고 하는 자리는 작전에 몰려 있다. 인사는 만사(萬事)니까 중요하고, 정보가 없으면 판단을 할 수 없으니 중요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군수와 관련된 병참 분야는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 찬밥 신세를 당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부대원들을 잘 먹이는 것이 전승을 결정하는 키가 된다. 제아무리 잘난 책사가 신통한 술(術)을 들고 온다 한들, 결국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충분한 체력과 사기가 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군량길을 끊고 고립시켜 괴사에 이르게 하는 전략은 예부터 흔히 쓰였다. 반대로 전선이 길어져도 군량을 포함한 전체적인 병참계획이 잘 잡혀 있는 부대는 쉽게 승기를 잡을 수 있다. 나폴레옹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긴 이동을 감행했음에도 유럽을 제패할 수 있었던 이유다.

최근 여러 경로를 통해 공개된 군대 식단과 시설에 대한 사진이 큰 화제였다. 이 논란의 시작은 부대 내의 코로나19의 대규모 감염을 막기 위해 휴가 복귀 후 격리되어 있던 병사들에게 제공된 도시락 사진이었는데, 한번 세상에 공개되자 너도나도 서로의 식판을 찍어 올리며 ‘우리 부대도 이렇다’는 제보가 연이어 터졌다. 부실한 식단과 곰팡이가 가득한 격리시설 사진을 보고 국방부를 향한 질타가 쏟아지자 육군과 국방부는 사과문과 개선 대책을 발표하며 일단은 수그리는 모양새다.

군대 내에서 발생한 사건을 지원해왔지만, 밥 문제로 이렇게 여론이 크게 형성된 것은 처음이어서 의아하기도 했다. 왜냐면, 군의 부실하고 질 떨어지는 급식 수준에 대한 지적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도소보다 못한 군대 급식.jpg’라는 제목으로 밥, 콩나물(머리만 있는)국, 조미김만 올라간 식판 사진이 포털 사이트나 커뮤니티에 게시되는 건 종종 있던 일이다. 우리 센터만 하더라도 지난해 10월 격리자에게 제공되는 부실 급식 식단 사진이 실린 보도자료를 통해 반드시 개선이 필요함을 강하게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제까지 병사들 먹이는 일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이 없었으면 2021년 5월에 와서 이런 식으로 부랴부랴 개선안을 내놓겠다며 머리를 숙이는지 헛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군대 급식이 개선되지 못하는 것엔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군대 급식은 학교와 달리 대부분 조리병이 소화한다. 급양 병과를 따로 관리하는 해·공군과 달리 육군은 조리병 중에 전문 조리는커녕 집에서 밥 한번 지어본 적 없는 병사들도 허다하다. 게다가 감군 계획으로 비전투인력인 조리병 수마저 더 줄이게 됐다. 손이 달리니 완제품이나 반조리, 반가공 식품 위주로 편성하게 된다. 365일 새벽같이 일어나 밥 짓느라 ‘혹사’당한 조리병들이 손목 터널증후군 같은 ‘직업병’을 호소하는 상담이 부실한 식판 상담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예산을 더 편성한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나아질 수 없는 환경이다.

장병들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의식주는 병력 관리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군 사기와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것처럼 군수와 병참은 늘 우선순위에서 등한시되고, 중요한 자리로 여겨지지 않는다. 간부들이야 영외 생활을 하니 그날 점심이 형편없다면 부대 밖으로 나가 사 먹으면 그만이다.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 바로 ‘관심’에 있다. 함께 먹고, 자고 하지 않는데 어찌 내 일처럼 생각할 수 있을까.

군대에서는 결식을 과업에 불참한 것으로 여기고 엄히 처벌한다. 그래서일까, 병사들에게는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나누는 “밥 먹었니?”라는 안부 인사를 잘 하지 않는다. 식사가 당연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밥 먹었니?”라고 물을 때 함축된 함의들―진짜 밥을 잘 먹었는지, 너의 식사는 행복하고 건강하고 또 여유로웠는지, 나아가 너의 일상 역시도 만족스러운지―을 병사들에게도 똑같이 물어야 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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