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설계자인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왼쪽)이 2019년 6월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고위당정협의회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최근 진보 경제학계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행사에서
소장파 진보 경제학자들이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현 정부에는 이들의 선배 세대 진보적 학자들인 홍장표 전 경제수석, 김상조 전 정책실장 등이 참여했던 터라 주목을 끌었다.
소장파 학자들의 비판 요지는
5년 임기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함에 따라 되레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부동산 정책을 비판 대상으로 삼았다. 또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가덕도 신공항 건설, 타다 불허 등의 인기 영합적 정책도 하지 말았어야 할 정책으로 꼽았다.
지난 4년의 경제정책을 돌이켜볼 때 뼈아프게 새겨들어야 할 지적들이다. 현 정부는 경제성장과 불평등 완화를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정책 목표를 내걸었으나 정책 수행 과정에서 부작용이 너무 도드라졌다. 최저임금의 경우 정권 초반기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채 불쑥 결정된 측면이 있지만, 부동산 정책은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정부가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다. 투기수요 억제와 보유세 강화, 임대주택 확대라는 큰 방향은 맞았지만 임대주택 등록자에 대한 세제 혜택, 임대차 3법 졸속 입법 등은 패착이 됐다. 특히 초저금리로 엄청난 유동성이 풀려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핀셋 정책’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목표는 애초에 달성 불가능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홍남기 부총리는 20일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부동산 문제는 고차원의 연립방정식과 다름없는 복합적 사안이다. 즉, 시장 수급 상황과 실수요·투기수요, 부동산시장 참여자, 정책 수단과 조합, 이해를 달리하는 다양한 해법, 심지어 심리적 요인까지 고려해야 하는 사안이어서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풀린다”고 밝혔는데, 뒤늦은 ‘참회록’처럼 들린다. 어찌 됐든, 부동산 정책은 참여정부에 이어 진보 정부에서 두차례나 실패를 함으로써 ‘경제 분야에서 진보는 무능하다’는 프레임에 빠뜨리는 악재 중의 악재가 되고 있다.
‘진보가 경제에서도 실력이 있다’는 점을 보이려면 지난 4년간의 공과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어떤 정책을 펴든 시장의 수용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계 10위권 규모인 한국 경제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 있다. 경제주체 간 거래관계가 촘촘하게 짜인 시장경제 생태계가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불평등과 불공정 개선이라는 선의의 정책 목표를 갖고 있더라도 이런 시장경제를 대상으로 정부가 과도하게 가격에 개입하는 행위는 자칫 ‘시장의 복수’를 불러오기 십상이다.
이런 정책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유능한 인재를 널리 구해서 중용해야 한다. 이번 정부는 인재풀이 너무 좁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는데, 취재현장에서 보면 개혁적 성향을 가졌으면서 동시에 시장의 작동원리에 능통한 경제전문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금의 시대정신이라 할 불평등·불공정 개선을 목표로 하는 ‘포용적 경제론’도 이미 주류 경제학에 편입된 터라 주류 경제학자 중에서도 그런 이들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을 통해 시장 친화적으로 분배를 개선하는 모델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권의 차기 대선 주자들도 기존의 인재풀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이런 이들을 삼고초려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야 한다. 천하를 얻기 위해 제갈량을 세번 찾아간 유비를 본받으라는 얘기다. 시장경제가 가장 발달한 미국의 경우에도 민주당 정부 당시 백악관에서 활약한 경제학자 면면을 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인재들이었다. 클린턴 행정부 때 조지프 스티글리츠(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재닛 옐런(전 연준 의장·현 재무장관), 오바마 행정부 때 래리 서머스(전 재무장관·하버드대 교수)와 앨런 크루거(프린스턴대 교수) 등이 그들이다.
내년 대선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금 여권이 경제 분야에서 맞닥뜨린 가장 큰 도전은 부동산시장 안정화다. 4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가까스로 2·4 공급대책을 마련해 안정을 찾는 듯하던 부동산시장이 보궐선거와 여당 당대표 경선 등을 계기로 다시 불안해질 조짐을 보인다. 처음엔 오세훈 서울시장이 후보 시절 불씨를 뿌렸지만 지금은 여권 내 갑론을박이 불안의 근원지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또다시 집값 폭등 사태가 빚어진다면 집 없는 서민의 불만은 더 커지고, 동시에 여권의 정권 재창출의 꿈도 멀어질 것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공약을 내세우더라도 부동산시장 안정화 없이는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존 부동산 대책의 큰 뼈대를 유지하는 선에서 서민·실수요자에 대한 일부 대출규제 완화는 가능하다고 보지만, 종부세·양도세 등 그 이상의 ‘핀셋’ 완화는 또 다른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박현 경제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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