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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재벌 총수와 ‘특수관계인’

등록 2021-05-24 16:41수정 2021-05-24 18:54

[유레카]

아일랜드씨씨(CC)는 경기도 안산 대부도에 있는 유명 골프장이다. 매년 여자 프로골프 대회가 열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0년 말 케이씨씨(KCC)그룹에 대해 아일랜드씨씨가 계열사인데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고 조처했다. 하지만 케이씨씨는 “터무니없다”며 펄쩍 뛴다. 어찌된 일일까?

케이씨씨 정몽진 회장은 아일랜드씨씨의 주식이 한 주도 없다. 임원 인사나 경영에도 관여하지 않는다. 케이씨씨도 마찬가지다. 거래관계도 없다. 아일랜드씨씨의 대주주인 권아무개씨가 정 회장의 처외삼촌일 뿐이다. 그런데 왜 아일랜드씨씨가 케이씨씨의 계열사라는 말이 나오는 것일까?

그 비밀은 대기업집단 지정제에 있다. 공정거래법상 대기업집단 지정제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다. 자산 5조원 이상 재벌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계열사에 일감 몰아주기 금지 등 각종 규제를 적용한다. 계열사는 재벌 총수(동일인)가 특수관계인(총수의 배우자, 6촌 이내 혈족, 4촌 이내 인척)과 함께 지배하는 회사이다. 총수와 특수관계인을 ‘경제적 이익 동일체’로 보는 것이다.

총수는 특수관계인과 계열사를 공정위에 신고할 의무가 있다. 위반하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케이씨씨와 아일랜드씨씨처럼 지분·인사·거래관계가 전혀 없어도 일단 계열사로 신고한 뒤 ‘친족 분리’라는 별도 절차를 밟아야 한다.

문제는 웬만한 총수들은 특수관계인이 200~300명에 달할 정도로 많다는 점이다. 이 중에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 회장 역시 처외삼촌인 권씨와 일면식도 없다고 한다. 총수가 특수관계인 소유 기업을 파악하는 것은 더 어렵다. “왜 남의 회사에 대해 알려고 하느냐”고 거부당하기 일쑤다. 한 그룹 총수는 “처벌을 안 받으려면 경영은 팽개치고 특수관계인 현황 파악에 나서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특수관계인 규정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86년이다. 당시는 범위가 더 넓었다. 2009년 공정거래법을 고쳐 혈족 범위를 8촌에서 6촌 이내로 좁혔지만, 이후에도 사회 변화를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공정위는 12년 간 이를 방치하다가 최근 특수관계인 범위 개선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조차도 쿠팡의 동일인 지정 논란이 없었다면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공정위는 35년 간 동일인 정의, 지정 요건 등을 법에 명확히 정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논란을 자초했다.

전경련은 최근 대기업집단 지정제 폐지를 요구했다.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등 재벌의 폐해가 여전한 터에 설득력이 없는 엉뚱한 얘기다. 하지만 공정위도 재벌 규제를 합리적으로 운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곽정수 논설위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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