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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비교와 융합

등록 2021-05-24 17:22수정 2021-05-25 02:05

정희진의 융합 _24
이십대 청년이 ‘정희진의 융합’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우석
이십대 청년이 ‘정희진의 융합’을 먼저 읽고 그리다. 김우석

개념은 홀로 만들어질 수 없어
모든 공부는 비교에서 출발

비교는
‘A는 이렇고 B는 이렇다’가 아닌
어떤 조건이 둘을 다르게/같게 하는가
에 관한 질문

‘라면’과 ‘갈비’ 비교는 의미 없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상태냐가 중요

삼라만상을 인식하는 첫 번째 원리는 비교이다. 모든 의미는 비교 대상과의 관계(차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차이가 의미를 제한(정의)한다. 궁극적으로, 공부는 차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문제다.

타인과 비교 ‘당하는’ 경우, 기분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평판이 좋은 사람과 비교당할 때와 누구에게나 비호감인 인물과 비교될 때, 기분은 천지 차이다. 자아 존중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 또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특정 인물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달라지거나 합의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의 예로 빌 게이츠를 들 수 있을까. 그의 결혼생활 보도 후 “빌 게이츠 같다”는 말은 모호하게 들린다.

한편, 비교는 상대방의 말을 강하게 부정하는 명확한 의사 전달 방법이기도 하다. “당신이 간첩이면, 나는 김정일이겠네”(영화 <간첩 리철진> 대사), “네가 우울증이면, 나는 말기 암이다”, “○○○가 진보면, 트럼프는 사회주의자” 등 일상에서 흔히 오가는 말들이다. 비교당하는 경우와 반대로, 자신을 특정한 타인과 ‘비교하는 경우’는 자기 재현에 속한다. “내 처지가 노숙자와 다를 바 없다”, “○○○는 제 인생의 모델입니다”…. 가장 상처가 되는 경우는 주로 어렸을 때가 아닐까. 부모나 교사가 ‘나’를 친구들과 비교할 때. 단어, 엄친아의 탄생 배경이다.

비교의 한자 표현 ‘比較’나 영어 ‘measure A against B, as against’는 대립과 ‘반’(反)을 뜻한다. 이는 ‘반대’라는 의미가 아니고, 우리가 아는 A에는 언제나 다른 세계(B)가 함께한다는 얘기다. 이성애의 정상성은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간주함으로써, ‘남성’은 여성/노인/가난한 사람/장애인 등 지배의 규범에서 배제된 ‘비(非)남성’을 상정했을 때만 가능한 개념이다. 서양은 고정된 동양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백인우월주의는 유색인종이라는 임의적 설정에서만 가능하다. 이처럼 대개 언어는 위계의 만남이다. 이분법은 A와 B가 아니라 A를 기준으로 A와 그 외 것들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맥락적 사유는 비교의 핵심

비교의 대상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한다. 내가 젠더와 관련해 받는 질문도 지난 20여년 동안 많이 변했다. 지금처럼 ‘겉보기에’ 남녀 갈등이 격화되기 전에는,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아무리 성차별이 심각해도, 여성의 지위가 조선시대에 비하면 엄청 나아진 것 아닙니까?”(이 정도면 됐지… 뭘 더 요구하는가)

나는 최대한 공손한 태도로 말했다. “일단, 저는 조선시대의 젠더 관계를 잘 모릅니다. 다만, 현대 여성의 지위는 현대 남성의 지위와 비교해야지, 왜 과거 여성의 지위와 비교하나요? 비교 대상 자체가 잘못된 거 아닐까요? 예를 들어, 현재 장애인의 지위는 지금 비장애인의 지위와 비교해야지, 조선시대 장애인의 지위와 비교한다면 장애인은 언제나 과거에 사는 이들인가요?” 그러나 당대에는 누가 더 피해자인가를 두고 싸운다. 남성과 여성 모두 하소연과 분노가 크다. 지금 자신이 조선시대 여성보다 나아졌다고 만족하는 여성은 없다. 요즘은 남성들이 훨씬 방어적이다. “남성은 군대 가고 여성은 안 간다, 여자는 가더라도 장교로 간다”며 자신을 구조의 피해자로 재현한다.

1980년대 말, 동유럽 사회주의 블록이 해체되었을 시기 치과의사 중에 여성이 절반이 넘는 국가들이 많았다. 이를 두고 한국의 어느 학자가 사회주의 국가의 여성 지위가 한국보다 높다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는데, 이는 비교의 조건이 생략된 잘못된 비교다. 여성의 지위는 남성과 달리 공적 영역의 역할만으로 측정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당시 동유럽 사회에서 치과의사는 전문성과 노동량에 비해 임금이 적은 ‘3D 직업’이었다(그래서 여성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의사는 고도의 전문성과 노동량이 요구되는 직업이지만, 의사의 지위는 사회마다 다르다. 한국과 다른 사회에서 의사의 의미를 비교하는 것이 먼저다. 그래야만 이에 종사하는 남녀의 비율이 여성의 지위 향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

비교는 자기 사회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함이지, 다른 사회의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가 아니다. 근대 국민국가의 ‘내부 식민지’로서 한국의 제주와 일본의 오키나와에 대한 비교와 연대에 관한 논의가 많은데, 이 역시 먼저 검토해야 할 맥락이 있다. 한국과 일본의 근대화 과정, 미국과의 관계, 제주와 오키나와, 서울과 제주, 동경과 나하(那霸, 오키나와현청 소재지)의 관계가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비교하려면 연구주제를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한다. 앎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이것이 기본이다.

과학의 개념 자체에 대한 논의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연과학을 더 ‘과학적’이라고 인식하는 이유는 변수(맥락)를 실험자가 통제한 상태, 즉 똑같은 조건에서 반복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류, 돌연 변수가 나올 수 있고 그것은 과학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에 관한 연구는 똑같은 조건을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오히려 인문사회과학 연구는 ‘변수’ 즉 새로운 배경, 상황, 맥락을 드러내기 위한 공부다.

간단히 말해, 라면과 갈비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상태를 봐야 한다. 식어서 굳은 기름이 붙은 갈비보다 뜨거운 라면이 맛있는 사람, 나뿐일까. 비교는 비교 대상의 상태에 관한 공부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A는 이렇고 B는 이렇다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무엇이 둘을 다르게 혹은 같게 보이게 만드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 과정에서 생산된 아이디어를 다른 사회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창의력이 중요하다. 그래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 융합이 된다.

비교 대상 내부를 드러내야

‘서양은 이렇고 동양은 저렇고, 남성은 이렇고 여성은 저렇다’는 식의 비교가 많은 것은 가장 쉽게 설득되는 통념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동서양과 남녀 구분은 가장 극복해야 할 문제다. 동서양과 젠더는 내부의 차이가 가장 크기도 하고, 오리엔탈리즘의 젠더화처럼 바람직하지 않은 결합을 양산한다. 이런 이분법은 갈등이 필연적인 것처럼 인식하게 한다.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 충돌 걱정이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선언의 논리 구조가 그것이다(두 사람 모두 이후에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The Geography of Thought)―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은 동서양을 비교한 대표적인 책이다. 생각도 없고 생각의 지도도 없는, 고정관념을 나열한 책이다. 나의 질문은 이것이다. 남미는 동양인가요? 아프리카는 서양인가요? 서양은 일부 유럽이고, 동양은 동아시아 왕조를 말하는 듯한데, 각각 내부의 역사와 일상은 동질적이지 않습니다. 계급, 부족, 젠더에 대한 분석 없이 어떻게 동서양 개념이 나올 수 있나요? 그런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리고 “당신이 뭔데” 동서양을 초월한 위치에서 둘을 비교하나요? 당신은 서양인이라는 사실이 이 책에 미친 영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융합적 비교는 현재 개념을 당연시하지 않고, 그것이 구성된 과정을 추적한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동서를 구분하기 전에, 어떻게 서양의 의지와 욕망이 동양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는지 분석한다.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의 <유럽을 지방화하기(Provincializing Europe)>는 서울이 중심이 아니라 하나의 지방이듯이, 유럽도 문명사의 원조가 아니라 하나의 지역일 뿐이라고 상대화했다. 오늘날 유럽의 지위는 지적, 물리적 폭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기존의 앎을 의심하지 않는 비교는, 무의미를 넘어 유해하다. 남성은 군대 가고 여성은 안 간다, 여자는 가더라도 장교로 간다? 일단, 조선시대 군역(軍役)부터 역사상 모든 남성이 징집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그때도 ‘없는 사람’이 대신 갔다. 국민개병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비리든 특례든 이유는 다양하다. 보직도 다르다. 남성도 장교 근무를 선택할 수 있다. 현역 복무 기간도 시대에 따라 40개월부터 18개월까지 다양했다. 공익근무요원‘조차’ 근무 지역만 ‘잘’ 선택하면 결국 면제다. 작년에만 1만명 이상이 이 제도로 면제받았다. 같은 군대 경험은 없다. 모병 방식을 남녀 비교로 접근하는 경우, 최악의 사례다.

정희진 ㅣ 여성학 연구자·문학박사. 글쓰기와 책읽기를 좋아한다. ‘논문, 비평, 수필, 편지, 칼럼’ 등 글의 장르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학 연구자로서 공부의 목적은, 기존의 논쟁 구도와 전선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여성주의와 탈식민주의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재해석하는 데 관심이 있다.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는다.

tobrazi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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