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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광란의 20년대

등록 2021-05-31 15:58수정 2021-06-03 11:56

[세상읽기] 이강국 ㅣ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광란의 20년대’라는 말이 있다. 1920년대 미국경제는 스페인 독감과 1차대전 종전 직후의 심각한 불황으로부터 급속히 회복하여 1921년에서 29년까지 국민소득이 연평균 약 3.7%나 성장했다. 전기가 보급되고 세탁기와 자동차, 라디오가 대중화된 풍요의 시대였다. 제조업의 비중이 높아졌고 노동생산성이 빠르게 상승했으며 주가는 1921년 저점에서 29년 정점까지 5배나 높아졌다. 미국식 자본주의와 소비문화가 만개한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였다. 

 이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와 비슷한 20년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등장하고 있다. 먼저 우려와 달리 미국을 필두로 세계경제의 회복세가 매우 빠르다. 국제통화기금이 지난 4월 발표에서 2021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6%로 예측하여 지난해 10월의 전망치에 비해 0.8%포인트나 높였고 미국의 성장률은 3.3%포인트나 높였다. 

 이와 함께 2020년대에는 생산성 상승도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정보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상승은 1970년대 이후 장기적으로 둔화되었다. 이러한 실망스러운 결과는 흔히 최근 기술혁신의 생산성 효과가 2차 산업혁명을 가져다준 19세기 말의 커다란 기술혁신에 비해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라 설명된다. 

 그러나 스탠퍼드대학의 브리뇰프슨 교수는 인공지능과 같은 범용기술이 도입될 때는 상당기간 그것을 보완하는 무형자본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총요소생산성의 상승이 과소평가된다고 주장한다. 즉 생산성 곡선이 J(제이) 커브의 모습을 띤다는 것인데, 코로나를 배경으로 한 디지털 투자와 조직 정비는 앞으로 생산성을 상승시킬 수 있다. 

 또한 최근 기술낙관주의자들은 정보기술뿐 아니라 새로운 백신기술과 바이오기술, 태양광에너지와 우주산업 등 새로운 혁신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게다가 최근 <이코노미스트>지도 보도하듯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달리 팬데믹 이후 기업들의 투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장기정체가 마침내 끝나고 2020년대에는 광란의 1920년대가 재현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생산성 상승을 위해서는 역시 생산적 투자와 신기술 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100년 전에 비해 현재는 기업의 이윤율이 낮아졌다. 수익성이 낮은 기업들이 파산했고 자본이 파괴된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부채가 많고 좀비기업들이 늘어났다는 것도 우려할 만하다. 또한 최근 독점의 심화와 역동성의 둔화는 자원배분과 관련된 생산성 상승을 억제하는 요인이다. 

 나아가 블룸 교수 등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연구개발의 생산성 자체가 여러 산업들과 경제 전체에서 역사적으로 하락해 왔다고 보고한다. 불평등의 심화와 불황으로 인한 총수요의 정체가 혁신과 생산성 상승에도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더욱 중요한 질문은 경제성장의 성과가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광란의 1920년대는 노동자들에게는 결코 번영의 시대가 아니었다. 자유방임주의 정책을 배경으로 노조조직률은 급락했고, 노동생산성의 상승에 비해 임금상승은 낮았으며 상위 1%의 소득집중과 소득불평등도 심화되었다. 

 이는 오히려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나타난 변화와 유사하다. 이제 많은 선진국 시민들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퓨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경제구조가 크게 변화하거나 완전히 개혁되어야 한다고 대답한 이들이 50%였으며 변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12%에 불과했다. 독일과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빈곤층에 대한 정부지원 확대와 부자증세를 지지했다. 40년 만에 약자와 노동을 편들고 부자증세를 추진하는 큰 정부가 등장한 것은 이를 반영한 것이다. 

 광란의 20년대가 다시 올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2020년대의 시대정신은 역시 모두가 번영하는 경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불평등을 개선하고 공공투자를 확대하는 바이든 정부의 정책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하지만 시장으로 간 추를 국가 쪽으로 약간 이동하는 것을 넘어 힘의 관계와 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한 더 많은 정치적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100년 전 20년대는 장기호황의 이면에 경제의 불균형이 심화되었고 그 끝은 결국 파국이었다. 역사를 잊지 않고 현재를 바꾸는 노력이 어떤 20년대가 올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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