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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안심소득은 과연 안심할 만한가

등록 2021-05-31 19:52수정 2021-06-01 02:37

[시론] 은민수 ㅣ 고려대 세종캠퍼스 공공정책대학 초빙교수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심소득’ 실험이 주목을 받고 있다. 안심소득 내용을 살펴보면 이 정책이 부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마이너스)의 소득세는 일반적으로 밀턴 프리드먼의 이론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프랑스 경제학자인 오귀스탱 쿠르노의 1838년 저서에서 처음으로 제안되었으며 이후 아바 러너, 조지 스티글러, 제임스 토빈 등 많은 학자가 연구하고 지지하였던 제도다. 이후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말까지 미국과 캐나다에서 사회실험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지금도 여러 국가가 완전한 기본소득을 도입하기 위한 전 단계로 검토 중이다.

부의 소득세(NIT·엔아이티)의 기본 아이디어는 매우 단순하다. 즉 소득이 국가가 정한 기준소득보다 많으면 세금을 내고, 소득이 기준소득보다 적으면 세금을 돌려받는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유독 여러 국가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빈곤을 근절시키는 동시에 근로를 유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일을 해서 소득을 벌어들일수록 감액된 엔아이티 급여를 받게 되어 결과적으로 총소득은 늘어나는 구조다. 따라서 빈곤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오히려 머무르려고 하는 복지의 덫을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복잡하고 고비용이 드는 복지행정 시스템을 단순화시키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무조건적 기본소득이나 엔아이티가 원리상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기본소득의 세율과 엔아이티의 감액률이 같다면, 기본소득을 먼저 지급하고 연말에 과세를 하느냐, 처음부터 소득에 따라 감액된 기본소득을 지급하느냐의 차이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기본소득과 엔아이티는 차이가 적지 않다. 결정적으로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 금액을 지급하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어 보편주의를 추구하는 반면, 엔아이티는 급여 대상과 보장 수준 등을 자의적으로 설정할 수 있어 사회보장 축소를 위한 선별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아마도 이러한 자의성과 탄력성 때문에 엔아이티가 정치적으로 관심과 지지를 받는지도 모르겠다.

오세훈 시장의 안심소득 제안은 중위소득 100% 이하의 가구를 대상으로 중위소득에서 부족한 소득의 50%를 차등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다. 보수 진영에서도 기본소득의 ‘사촌’인 엔아이티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할 만하지만 오세훈 시장의 안심소득 방안은 몇가지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다.

첫째, 중위소득 100% 미만의 가구 단위를 대상으로 선별 지급할 경우 1인 가구일수록 다인 가구에 비해 급여액에서 유리하므로 가족 해체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가구’를 정의하기 쉽지 않다. 이것이 기본소득이나 최근 엔아이티 방안들에서 가구 대신 개별 단위를 선호하는 이유다. 둘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의료급여를 제외한 생계급여, 주거급여, 자활급여를 폐지하고 근로장려금, 자녀장려금까지 폐지하는 것은 혼란과 불만을 야기할 수 있다. 소득인정액에 따라 저소득층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셋째, 안심소득 방안대로라면 소득이 전혀 없는 4인 가구의 경우 안심소득으로 연 3천만원(월 250만원)을 받는다. 그런데 여기에 올해부터는 시행되는 실업부조(6개월간 1인당 50만원)나 아동수당, 청년수당 등을 받으면 그 이상이 될 것이다. 넷째, 엔아이티는 국세인 소득세 및 기존 중앙정부의 사회보장제도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마음대로 실현할 수 없는 국가 차원의 제도다. 실험은 할 수 있겠지만 지방정부가 기초생활보장제도나 근로·자녀장려세제를 폐지 혹은 축소하는 결정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서울시의 실험 시도는 정치적, 정책적, 재정적으로 의미가 깊고 한국 사회의 기본소득 논의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기왕 기본소득의 링 위에 올라왔으니 다양한 기본소득, 엔아이티 방안들과 선의의 정책 경합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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