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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한-미 동맹, 정말 문제없을까?

등록 2021-06-01 17:29수정 2021-06-02 02:35

동맹의 상위 동반자인 미국이 동북아에서의 현상 유지를 바라는 이상 한-미 동맹은 하위 동반자인 한국의 안보를 보장해준다고 말할 수 있지만, 미국이 그 위상이 제고된 중국에 대한 견제 등 현상 유지 이외의 다른 목적을 선포하는 순간 하위 동반자인 한국의 입장은 절로 곤란해진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박노자 ㅣ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30년 전인 1991년 내가 처음으로 한국에 왔을 때는 내 눈으로 ‘미군 철수’를 외치는 대학생 시위대를 몇번이나 봤다. 그때에는 꽤나 흔한 구호였다. 그때 그 구호를 외친 자칭 ‘애국 애족’ 학생들은 지금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중의 일부는 오늘날 청와대에서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할 외교 일정을 관리하거나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대해서 ‘한-미 동맹의 신기원’과 같은 논조의 언론 기사를 여러 신문사에서 쓰고 있을 것이다. 이번 대통령의 방미는 성과가 많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보도하는 기사들을 보면 한-미 동맹의 본질적 문제점들에 대한 고민을 찾기가 힘들다. 과연 이제 확고한 한-미 동맹 강화론자가 된 과거의 그 ‘운동권’들은, 조금이라도 과거 자신들의 주장을 되새겨보고 그 주장의 논거들이 지금도 유효할 수 있는지 고민해볼 생각은 있을까.

30년 전에 ‘운동권 학생’들의 분노를 산 것은 한-미 동맹의 가시적인 비대칭성이었다. 국가 주권은 핵심적인 근대적 가치 중의 하나인데, 한-미 동맹은 한국의 국가 주권에 대한 상당한 침해로 보일 정도로 불평등해 보였다. 사실 1994년 이전까지 전시 작전통제권은 물론이고 한국군의 평시 작전통제권까지 미군의 손에 장악되어 있었다. 현재는 다소 완화되었지만 한-미 동맹의 본질적인 불평등은 여전하다. 예컨대 한국의 대북 정책을, 한국의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일일이 미국과 조율해 나가야 하지만, 미국은 예컨대 대중국이나 대러시아 정책에서 한국 정부의 의견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할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 미국이 요구한 한국군 해외 파병을, 한국 정부는 2003년 12월 노무현 정권이 이라크 파병을 재가한 이후로 사실상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2003년 당시 문재인은 노무현 정권의 민정수석으로서 이라크 파병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문재인은 작년에 대통령으로서 호르무즈해협 파병에 찬동했다. 아니, 찬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차라리 맞을 것이다. 한-미 동맹의 본질적 구조상 그런 상황에서 미국에 ‘노’라고 하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셈이다.

혹자는 철석같은 안보를 위해서라면 불평등한 동맹과 주권 제한을 용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주권을 절대시할 필요야 없지만 주권 제한의 상황은 장기적으로는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한다. 동맹의 상위 동반자인 미국이 동북아에서의 현상 유지를 바라는 이상 한-미 동맹은 하위 동반자인 한국의 안보를 보장해준다고 말할 수 있지만, 미국이 그 위상이 제고된 중국에 대한 견제 등 현상 유지 이외의 다른 목적을 선포하는 순간 하위 동반자인 한국의 입장은 절로 곤란해진다. 며칠 전 한·미 양국이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대만 문제를 처음 언급한 데 대해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이 사실을 웅변적으로 잘 보여준다. 중국이나 한국 일부에서 대만 문제는 중국 내부 문제에 해당하겠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대만 단독정부 지속의 보장은 중국 견제 전략의 일환이다. 이 문제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입장이 서로 다르지만, 대북 관계의 진전에 미국의 동의를 이끌어내려는 한국 정부는 부득불 동북아 지역 전체에 관계되는 문제에서 싫든 좋든 미국의 시각을 그대로 공유해야 하는 것이 현 한-미 동맹의 구조다. 과연 앞으로 중-미 대립이 현재보다 첨예화할 경우 이와 같은 동맹의 구조는 한국을 또 어떤 외교·무역 차원의 불편함과 위험을 감수하게 만들 것인가?

30년 전에 ‘운동권’과 대립했던 보수 쪽은 한-미 동맹의 가장 중요한 존립 근거로 ‘북한 위협’을 들곤 했다. 북핵과 미사일 때문에 지금도 종종 반복되는 주장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북한의 명목 국내총생산(약 35조3천억원 추산) 전체가 한국의 올해 국방예산(52조8401억원)의 70%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려진 일이다. 2021년 현재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6위로 평가되지만, 북한은 28위다. 즉, 주로 대미 방어용인 핵과 미사일을 고려하더라도 ‘대북 억제력’ 차원에서 현재와 같은 미군의 국내 주둔까지 포함하는 한-미 동맹이 꼭 필요하다는 말은 아무래도 ‘무리한 주장’으로 들릴 수 있다. 그렇다면 젊은 시절 ‘미군 철수’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던 오늘날 한국의 자유주의적 정치인들이 한-미 동맹 강화 노선을 채택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과거에 중국 중심의 조공 체제에 편입되어 있다가 벗어났거나 중국 계통의 인구가 많은 중국의 주변 국가들이 중국 ‘부상’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최근에 군사 부문을 포함한 대미 협력에 힘을 싣는다고 본다. 한때 미국의 침략으로 황폐화된 베트남도 10년 전부터 미국과의 군사협력을 시작했으며, 2016년 이후 미국으로부터 무기 구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싱가포르도 2015년부터 미국과 확대된 군사협력 협정서를 체결해 미군 정찰기의 싱가포르 군사 비행장 이용이나 미국 군함의 정박 등을 용인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이 아닌 영국에 의존해온 말레이시아도 최근에 미국의 첨단 무기를 대량으로 구입하는 등 중국의 부상에 대비해 일종의 ‘보험’에 가입하는 모습을 보인다. 즉, 한국뿐만 아니라 역내의 일부 다른 국가들도 중화주의 내지 중국의 지역적 헤게모니 부활 가능성을 의식해 미국에 좀 더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인다. 한데 한국과 달리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초강대국 ‘사이’를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항해하면서 양쪽에서 실익을 챙겨 갈 수 있다. 동남아시아의 이 세 국가는 미국과의 군사 관계를 보강하는 한편 중국과의 군사 관계도 유지하고 있다. 배타적 ‘동맹’인 한-미 관계의 현실에서는 거의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다.

한가지 오해는 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현재 시점에서 한-미 동맹의 ‘해체’ 같은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국군 등의 미군과의 유착 정도도 쉽게 끊지 못할 만큼 매우 강고하고, 여론조사마다 90% 이상의 한국인이 한-미 동맹 지지를 나타내는 것도 현실이다. 이 현실을 직시하면서 한-미 동맹의 문제점도 아울러 진지하게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중-미 갈등에 한국까지 불필요하게 휘말릴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와 같은 한-미 동맹 구조 속에서 남북한의 신뢰 구축과 상호 군축, 나아가 느슨한 국가 간의 연합과 같은 형태의 통일의 길이 과연 열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한-미 동맹 강화론이 대세라 해도 이 동맹에 대한 문제의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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