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의 사전적 의미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하며 적은 기록”이다. 자전적 연대기 형식이 아니라 특정 주제나 굵직한 사건을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자서전과 구별된다.
회고록의 저자는 정치인·기업인 같은 명사들이다. 범부들의 자전 기록엔 회고록 대신 ‘수기’라는 이름이 따로 할당된다. 회고록으로 가장 유명한 현대 정치인은 윈스턴 처칠이다. 1953년에 회고록 <제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해 유력 후보가 ‘문호’ 헤밍웨이였으니 더 보탤 말이 없다.
명사들의 회고록은 저자와 출판사에 적잖은 금전 수익을 안겨준다. 처칠의 책들 역시 펴내는 족족 베스트셀러가 됐다. 영국 역사학자 폴 존슨이 “처칠의 능력은 전쟁을 언어로 바꾸고 언어를 돈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정치인 회고록은 당사자의 1차 서사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 또한 상당하다. 다만 숙련된 역사가가 엄정한 사료 비판에 근거해서 쓴 기록은 아닌 만큼 주관성의 개입은 피할 수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회고록 <조국의 시간>을 냈다. 출간 이유를 “언론이 검찰의 일방적 주장과 미확인 혐의를 무차별적으로 보도하였기에 책으로 최소한의 자기방어를 하는 것”이라고 페이스북에 썼다. 반응은 2019년 ‘조국 대전’ 당시 서울 서초동과 광화문 풍경만큼이나 양극화돼 있다. 그의 신원을 바라는 지지자들은 신속한 ‘매장 완판’으로 화답했다. 비판자들은 “조국과 추종자들이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에서 반복해 온 뇌피셜의 재탕”이라 깎아내린다.
책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몫이다. 다만 간과해선 안 될 게 회고록이라는 서사물의 장르적 특성이다. 거기엔 기억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사실관계의 오인과 누락뿐 아니라, 자신의 선택과 행위에 대한 사후 정당화 욕망이 필연적으로 작동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객관적 거리를 확보하고 싶은 독자라면 책이 말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 텍스트의 매끈한 표면이 아닌 틈과 공백, 망설임의 요철을 주시해야 한다. 모든 회고록이 요구하는 건 몰입이 아닌 징후적 독해다.
이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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