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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모두의 화장실 / 이종규

등록 2021-06-06 14:13수정 2021-06-07 02:08

화장실은 성별 이분법 규범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공간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별을 기준으로 ‘이용 자격’ 여부가 결정된다. ‘지워지는’ 존재가 나오는 건 필연적 귀결이다. 지정 성별(태어날 때 주어진 성)과 다른 정체성을 지닌 채 살아가는 트랜스젠더가 대표적이다. 그들에게 화장실은 차별과 배제의 공간과 다름없다. 국가인권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혐오 차별 실태조사’(2020년)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 트랜스젠더의 36%가 ‘부당한 대우나 불쾌한 시선을 받을까봐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국제 인권규범에 비춰 볼 때 이런 상황은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에 해당된다. 국제인권법 전문가들이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된 기준을 정리한 ‘욕야카르타 원칙’에는 ‘위생에 대한 권리’도 포함돼 있다. 국가는 학교와 직장 등에서 모든 이들이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없이 안전하게 위생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성중립 화장실’이 확산되는 배경에도 이런 원칙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에선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던 2015년 백악관에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되기도 했다.

‘성중립 화장실’이 성소수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성별이 다른 노부모나 어린 자녀와 함께 외출한 이들, 성별이 다른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장애인 등 기존 ‘성별 분리 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이른바 ‘모두를 위한 화장실’ 개념이다. 한 칸마다 변기(유아용 포함)와 세면대가 나란히 놓여 있고, 장애인 편의시설, 거울 등을 갖춘 ‘1인 화장실’이다.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 캠페인을 벌여온 한국다양성연구소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성별 이분법 규범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도 된다는 사회 구성 원리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성공회대 학생자치기구가 성별, 나이, 장애 유무, 성적 지향 등과 상관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7년에도 시도됐으나 찬반이 엇갈려 무산됐다고 한다. 이번엔 국내 대학 최초의 ‘모두의 화장실’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종규 논설위원 j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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