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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당신의 잎사귀도 진다

등록 2021-06-09 13:50수정 2021-06-10 02:40

9일 오전 광주 동구 강남요양병원에서 90대 입원 환자와 딸이 비대면 면회를 하던 중 투명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마주대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9일 오전 광주 동구 강남요양병원에서 90대 입원 환자와 딸이 비대면 면회를 하던 중 투명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손을 마주대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세상읽기] 조문영ㅣ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지난 주말에 제주의 바다를 찾았다. 거리두기 요구에 지쳐서일까, 날씨가 그저 유난히 좋아서였을까. 해수욕장은 인산인해였다. 부동산에서 코인 투자까지, 식당과 카페에선 경기도 동네에서 늘 듣던 이야기가 오갔다. 그래도 코로나19 이전과 다른 게 있다면 노인들이 별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부가 아이와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면 5인 이상 집합금지 규정에 걸리기 쉽다. 확진자가 줄지 않는 상황에서 감염에 취약한 노인들이 먼 거리를 이동하기도 버거울 테다.

나는 혼자 제주에 왔다.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이 어려워진데다 지병이 많아 자의 반 타의 반 ‘집콕’ 신세가 된 엄마는 비행기 타는 게 두렵다며 오기를 망설인다. 요양원에 계신 아빠의 바깥출입은 어림도 없다. 제주에 오기 전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만났는데, 소리가 안 들리는 건지 인지기능이 더 떨어진 탓인지 아빠는 동문서답만 반복했다.

“내 잎사귀가 다 지는 것 같아.” 영화 <더 파더>에서 치매를 앓는 주인공이 남긴 말이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노인의 시간은 낙엽이 지고 새순이 돋아나는 사계의 시간과도, 새순이 자라 나무가 되고 울창한 산림을 이루길 바라는 근대의 시간과도 확연히 다르다. 코로나 이전에도 노인의 시간이 환영받았을 리 없지만, 지금은 존재감이 심각하게 사라졌다. 공공기관이 가장 먼저 문을 닫으면서 집 밖에서 또래와 어울릴 수 있는 장소도 줄었다. 부고장은 어김없이 “코로나 상황으로 조문을 정중히 사양한다”라는 문장과 함께 도착했다. 70살 이상 인구가 코로나19 사망자 수의 8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상당수 노인이 병원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다 외롭게 죽었고, 죽어서도 제대로 배웅을 받지 못했다.

생명이든 사물이든 쓸모를 기준으로 가치를 셈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인이 된 인간도, 노인과 관계하는 인간도 무력하긴 매한가지란 생각이 든다. 코로나19 와중에 내가 만난 노인 다수는 무시와 외면에 상처받았고,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직장에서 이름값을 하고, 공적 삶에 유난히 무게를 두었던 남성 노인일수록 더 심했다. 평생 가사노동과 비정규직을 오갔던 나의 엄마는 공적 가면의 굴레에서 다소간 자유로웠지만, 그럼에도 타인의 시선 앞에 초라해질까 걱정했고, “내가 이제는 반찬도 못 해주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인생의 낙이던 등산은 고사하고 평지를 걷기도 버거워졌을 때, 가꾸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게 일상이 된 현실을 곤혹스럽게 마주했다.

살면서 가장 열심히 한 게 공부인데, 나 역시 노년에 관해 일자무식이다. 노인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를 가치 있는 학습의 장으로 만들지 못했다. 봉급을 털어 여행사에 ‘효도 외주’를 맡기기도 했으나, 이마저도 어려운 지금은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기, 병원에 동행하기, 카카오톡으로 재밌는 유튜브 영상이나 생활정보 공유하기가 고작이다. 카톡 이모티콘이 계속 진화하는 데서 그나마 안도감을 느낀다. 내가 하트를 날릴 때 엄마가 엉덩이를 씰룩이는 곰돌이 이모티콘이라도 보내주면 마음이 놓인다. 성장에 초점을 맞춘 교육에 익숙해진 탓에 마모되고 죽어가는 삶을 위한 공부를 게을리한 결과다. 사족이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적 학습이 지지부진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이지 않을까.

한국은 2015년 “국민의 건강하고 안정된 노후생활”을 위해 노후준비지원법을 제정했다. 노후준비를 “노년기에 발생할 수 있는 빈곤·질병·무위·고독 등에 대하여 사전에 대처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노후 삶의 디자인을 돕겠다며 재무설계,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양산했다. 하지만 재부를 악착같이 쌓아서 (정부가 선전하듯) “폐지 줍는 노인”이 아니라 “손자에게 용돈 주는 노인”이 됐다 해도 몸이 점점 말을 안 듣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비껴갈 순 없다. 열심히 준비해도 안 된단 걸 모두가 아는데 개인에게 책임을 강요하고, 준비 못 한 개인에게 죄책감을 씌우고, 노년의 불안과 공포를 자본화하는 데만 전념하는 건 아닐까?

백신 접종이 늘면서 복지관, 경로당, 주민센터가 속속 문을 열고 있어 다행이다. 코로나19 이후에는 노인의 일상이 ‘정상’을 회복했다고 자축하는 것과 다른 움직임이 시작되면 좋겠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삶이 생장하는 삶만큼 모두의 운명이라면, 양자를 대등하게 다루진 못해도 전자에 약간의 존엄을 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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