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윤석열이 ‘우당 기념관’에 간 까닭은 / 안영춘

등록 2021-06-14 16:03수정 2021-06-15 02:07

이준익 감독의 근작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설경구)은 “내가 바라는 세상은 양반도 상놈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라고 말한다. 실제 기록에 근거한 대사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사회에서 유난히 이해도가 낮은 ‘아나키즘’의 핵심을 잘 짚고 있다. 아우 약용(류승룡)의 목민적 사유와 자연스럽게 대비한 연출은 아나키즘의 결까지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아나키즘(anarchism)은 ‘무정부주의’로 번역된다. 엉터리없는 번역은 아니지만, 납작하고 빈약한 번역이다. 아나키즘이 반대하는 대상은 정부에 국한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국제관계 등 모든 분야와 차원의 억압적 지배에 반대한다. 무엇보다 ‘무정부주의’는 미국 서부영화 속 같은 무법천지를 연상시키는 부정적 효과가 크다. 정약전이 ‘무법자 총잡이’로 둔갑하는 꼴이다.

물론 아나키즘이 통치적 질서에 부정적 태도를 보이는 건 분명하다. 심지어 혼돈을 억압에 맞설 수 있는 조건으로 인식하는 줄기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나키즘의 본령을 보여준다기보다 아나키즘의 하위범주가 통약 불가능할 만큼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구성된 특성을 보여준다. 아나키즘 앞에 조합주의부터 채식주의까지 온갖 층위의 관형어가 붙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아나키즘의 역사는 고대 아테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근대적 아나키즘은 19세기 프랑스의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이나 러시아의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바쿠닌 같은 이들로부터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사적 소유 철폐를 위한 혁명운동을 주창하면서도 중앙집권적인 마르크스주의에도 지극히 비판적이었다. 분권과 자치가 없으면 평등도 해방도 없다고 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식민 지배가 아나키즘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반자본주의와 반볼셰비즘에 민족주의가 결합한 형태다. 당시 아나키스트들은 민족이 해방돼야 인간도 해방될 수 있다고 봤다. 우당 이회영 선생이 대표적이다. 지난 9일 우당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개관식 참석자 가운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단연 튀었다. 유신헌법의 그림자가 드리운 ‘자유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검찰주의자가 자신의 기념관을 대권 행보의 무대로 삼은 걸 알면, 우당 선생은 뭐라 할까.

안영춘 논설위원 jon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일상적 불심검문에 대학생·시민들 ‘불복종’…공권력 바꿨다 1.

일상적 불심검문에 대학생·시민들 ‘불복종’…공권력 바꿨다

이제 윤석열과 검찰이 다칠 차례다 2.

이제 윤석열과 검찰이 다칠 차례다

‘윤 부부 비방 글’ 논란, 한동훈은 왜 평소와 다른가 3.

‘윤 부부 비방 글’ 논란, 한동훈은 왜 평소와 다른가

[사설] 대학교수 시국선언 봇물, 윤 정권 가벼이 여기지 말라 4.

[사설] 대학교수 시국선언 봇물, 윤 정권 가벼이 여기지 말라

[사설] 대통령 관저 ‘유령건물’ 의혹 더 키운 대통령실 해명 5.

[사설] 대통령 관저 ‘유령건물’ 의혹 더 키운 대통령실 해명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