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제25조는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명령 복종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군대의 상명하복 특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군인은 무조건 명령에 따르고 인권 침해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군대에서 일부 상급자는 불합리한 지휘·통솔 방식을 하급자에게 강요한다. 이들은 군복을 입은 군인은 시민의 권리를 온전히 누릴 수 없다고 본다.
최근 군 인권 침해가 이어지면서 근본 대책으로 장병을 ‘제복 입은 시민'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제복 입은 시민’ 개념은 서독이 1950년대 독일연방군을 창설하면서 나왔다. 독일국방군과 독일연방군은 전혀 다른 군대다. 독일국방군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학살 등 전쟁범죄를 저지른 나치 군대다. 1955년 서독은 나치 군대의 만행을 반성하고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에 충실한 독일연방군을 창설했다.
서독은 ‘내적 지휘’(Innere Fuhrung)를 독일연방군의 핵심 가치로 제시했다. 내적지휘는 ‘제복 입은 시민’을 지향한다. 독일연방군 복무규정은 ‘제복 입은 시민’을 “자유로운 인격체, 책임 의식을 지닌 시민, 전투 준비 태세가 완비된 군인”이라고 설명한다. 인격과 시민이란 용어를 군인 앞에 내세운 게 눈에 띈다. 독일은 군대를 시민사회와 분리하지 않고 인간과 시민의 토대 위에 세워진 것으로 본다. 18세기 독일 철학자 칸트의 ‘무기를 든 시민’을 ‘제복 입은 시민’ 개념의 뿌리로 보는 견해도 있다.
독일 관련 법률은 군인에게 인간 존엄을 해치는 명령이나 직무상 목적에 부합하지 명령에는 불복종을 허용한다. 자신의 종교적 또는 양심적 신조에 반할 경우 군 복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양심적 반전권)도 인정한다. 독일 법원은 유엔의 승인을 받지 않은 무력 사용에 동원되기를 거부하는 병사에게 탈영을 허용해야 한다는 판결도 했다. 히틀러의 명령에 맹종했던 나치 군대가 저지른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조처들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 군은 ‘군복 입은 민주시민’이란 용어를 사용해왔지만 이를 구현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다. ‘닥치고 복종’이 아닌 ‘제복 입은 시민’을 우리 군의 핵심 가치로 세워야 한다. 권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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