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들이 건물 내부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쿠팡에서 잇단 노동자 사망에 이어 물류센터 화재 사고까지 발생한 이면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안전과 노동에 대한 부실한 감시·감독이 도사리고 있다. 쿠팡의 일차적 책임이 크지만, 정부·지자체도 쿠팡이 한국의 대표 인터넷 상거래업체(이커머스)로 성장한 것에 눈이 팔려 공적 역할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사망한 쿠팡 노동자는 무려 7명이다. 평균 50여일 간격으로 1명씩 쓰러진 셈이다. 그때마다 무리한 ‘시간당 생산량’ 시스템 등으로 몰아세운 데 따른 과로사라며, 죽음의 정확한 원인을 밝혀달라는 호소가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사망한 장덕준(당시 27살)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새벽까지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가 퇴근한 뒤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근로계약서에 따르면 근무시간이 저녁 7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이고, 이처럼 밤을 꼬박 새우는 심야노동이 한달에 20일 넘게 이어졌다. 연장근무를 하는 날은 새벽 5시30분까지 최장 9시간 이상 일을 했다. 유족은 “(장씨가) 쿠팡의 ‘시간당 생산량’ 시스템에 따라 업무 처리가 늦을 때마다 물류센터 관리자들에게 호출을 당해 질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라는 말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쿠팡은 “과로사와는 상관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한다. 고용노동부도 쿠팡 노동자가 직고용돼 다른 택배노동자들에 비해 고용 조건이 상대적으로 낫다는 것에만 주목했다. “법상 ‘시간당 생산량’을 규제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과로사 위험에 대한 관리·감독에 소극적이다. 이러고도 노동자의 잇단 죽음에 정부 책임이 없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법이 미비하면 정부가 앞장서서 개선하는 게 마땅하다.
지방자치단체도 고용 창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물류센터 유치 경쟁에 매달리다 보니 화재 위험에 대한 감시가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겨레> 보도를 보면, 화재가 발생한 쿠팡 덕평물류센터의 경우 화재 발생 직후 8분 동안 스프링클러 작동이 지연됐다. 회사가 장치 오작동에 따른 작업 중단을 막으려고 화재와 연동되는 스프링클러 수신장치 작동을 막았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쿠팡의 안전불감증은 물론 감독당국의 책임 유무에 대해서도 엄중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쿠팡은 진화 작업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김동식 119구조대장의 유족들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고, 물류센터 인근 주민을 위한 지원센터도 개설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코로나에 집단감염된 물류센터 노동자 가족에 대한 보상 협상이 21일 끝내 결렬됐다. 노동자는 1년째 의식을 못 찾고 있는 배우자에 대한 치료비 등 쿠팡의 성의 있는 지원을 바라지만, 회사 쪽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최종안을 고수했다고 한다. 쿠팡이 진정으로 책임을 느끼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