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이틀 앞둔 25일 오전 경기 수원의 한 공사장 건설자재 속에 안전모가 놓여 있다. 수원/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해 1월 천신만고 끝에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27일부터 시행된다. 이에 따라 앞으로 안전·보건 의무를 소홀히 해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받게 된다. 국회 통과 과정에서 후퇴를 거듭해 법 제정 취지가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 법이 시행되는 것만으로도 ‘일터의 죽음’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 우선은 산업 현장에서 법이 잘 뿌리내리도록 힘을 쏟되,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면 보완 입법을 통해 실효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황망한 일터의 죽음은 새해 들어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광주에서는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어처구니없는 붕괴 사고가 나 노동자 1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24일에는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끼임 사고로 노동자 1명이 숨졌고, 20일에는 경북 포항 포스코 포항제철소(충돌), 19일에는 전남 영암 현대삼호중공업(추락)에서 잇따라 산재 사망 사고가 났다. 광주 붕괴 참사의 경우 중대재해법이 일찍 시행됐더라면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중대재해법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참변을 당한 김용균씨 등 수많은 희생을 씨줄 날줄 삼아 고통스럽게 자아낸 결과물이다. 일터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재계는 여전히 중대재해법을 ‘기업 옥죄기’로 몰아가고 있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대표이사가 처벌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등 ‘종이 호랑이’라는 혹평이 나오는데도, 기업에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을 지워 정상적인 경영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며 처벌을 완화하라고 아우성이다. 안전 조처를 강화하기보다는 대형 로펌 등의 법률 자문을 통해 법망을 피할 방법을 찾는 데 급급한 모습은 중대재해법의 보완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일부 보수 언론의 태도도 문제다. ‘사업 하다 구속되느니, 사업을 접는 게 낫다’는 둥 기업인들의 과도한 불만을 여과 없이 전하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해 사망 사고를 낸 기업주가 처벌 받는 건 안타깝고, 일하다 참혹한 죽음을 맞는 건 괜찮다는 얘기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대재해법의 취지는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엄한 법적 책임을 물어 산재 사망을 막자는 것이다. 처벌이 아니라 예방이 목적이다. 평소 산재 예방을 위해 충분히 안전 조처를 했다면, 혹여 사고가 나더라도 경영책임자가 처벌 받을 일도 없다. 안전에 대한 투자를 낭비로 여기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