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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현 정부 장관에게 ‘백기투항’ 요구, 인수위가 점령군인가

등록 2022-03-24 18:19수정 2022-03-24 18:30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가 예정됐던 법무부 업무보고를 유예한다고 밝힌 24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가 예정됐던 법무부 업무보고를 유예한다고 밝힌 24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등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검찰 공약에 반대한 박범계 장관의 발언을 문제삼아 24일 예정됐던 법무부 업무보고를 유보시켰다. 인수위 정무사법행정분과는 이날 업무보고를 30분 앞두고 갑자기 기자회견까지 열어 “무례하다.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연기를 발표했다. 윤 당선자의 대통령 임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인수위는 말 그대로 정부의 현황을 파악하며 새 정부의 정책 기조를 준비하는 게 본연의 업무다. 그런데 마치 새 정부가 이미 시작된 것처럼 현 정부 장관의 정책적 입장까지 통제하려 들고 있다. 이게 점령군 행태가 아니고 뭔가.

인수위의 그릇된 인식은 “행정 각 부처의 구성원들은 국민이 선출한 당선인의 국정 철학을 존중하고 최대한 공약의 이행을 위해 노력할 책무가 있다”는 발표 내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행정 부처가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공약을 집행할 책무가 있다는 원칙은 맞지만, 이는 현직 대통령에 적용되는 것이다. 현 정부의 각료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임기 마지막날까지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당선자 신분에서 현 정부 장관에게 ‘왜 공약에 찬성하지 않느냐’며 백기투항을 요구하는 것은 정부 운영의 상식에 어긋나는 무지이자 오만이다.

게다가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해도 장관에게 ‘다른 의견을 말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것은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국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는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고 활발하게 논쟁하고 최선의 방안을 찾고, 이후 결정된 사항은 책임 있게 집행하는 게 민주주의 국가 운영의 기본 원리다. 하물며 현 정부의 정책 추진 상황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인 인수위 업무보고에서는 상호 이견을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토론을 하면 그만이다.

인수위의 독선적인 태도는 애초 법무부와 대검찰청 업무보고를 동시에 진행하려 했다가 별도로 보고받기로 한 데서도 드러났다. 법무부와 달리 윤 당선자의 검찰 공약에 찬성 입장을 밝힌 대검을 분리시킨 것이다. 인수위는 법무부 업무보고는 아예 연기해버리고 입맛에 맞는 대검 업무보고만 진행했고, 업무보고 뒤 ”대검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검찰의 독자적인 예산 편성권 등 당선인의 공약에 깊이 공감했다”고 밝혔다. 인수위 단계부터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치기 어린 감정적 대응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인수위는 이제라도 파행적 운영을 멈추고 상식에 따라 업무 인수인계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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