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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설] 대통령 집무실 앞 시위 금지, 명분도 근거도 없다

등록 2022-05-18 14:41수정 2022-05-18 14:49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들머리에서 기념대회 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들머리에서 기념대회 행진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이 경찰의 ‘대통령 집무실 앞 100m 이내 집회 금지’에 대해 유엔에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앞서 경찰이 금지 통고한 용산 집무실 앞 행진을 법원이 부당하다고 결정했음에도 경찰이 집회 금지 방침을 고수하는 데 따른 대응 차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무실을 무리하게 용산으로 옮기면서 내세웠던 ‘국민과의 소통’이란 명분과도 배치되고, 비민주적 규제라는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하게 될 집회 금지 조처는 철회돼야 마땅하다.

민변은 진정서에서 경찰의 조처는 정부가 1990년 비준한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위배되며, 특히 집회·시위 제한은 구체적인 법에 근거해야 한다는 적법성 원칙과 배치된다고 밝혔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는 대통령 ‘관저’만 집회·시위 금지 장소로 규정했을 뿐 집무실에 관한 규정은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우리 법원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집무실 앞 행진을 금지한 경찰 처분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며 낸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집시법 입법 취지와 목적 등을 고려할 때 집무실이 관저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통상적 의미를 벗어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법에 근거하지 않은 채 당국의 자의적 결정으로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현행법상 집회·시위 금지 장소인 국회의사당·법원·헌법재판소 인근에서도 재판 등 활동에 영향을 미치거나 기관의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있을 때에만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게 돼 있다. 집회·시위의 성격도 따지지 않고 일단 금지하겠다는 것은 법 취지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다. 경찰이 금지하려 했던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의 행진은 지난 14일 평화롭게 마무리됐다. 정작 대통령은 집무실에 있지도 않았으니 행진 금지를 둘러싼 그간의 논란이 한편의 블랙 코미디처럼 느껴질 정도다.

우리나라 경찰의 강경한 집회·시위 대응은 여러 차례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 2016년에는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직접 방한해 조사 활동을 벌이고 “(한국의 집회 자유가)점진적으로 무너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후 경찰의 대응 방식도 개선돼왔고 촛불집회 등 우리나라의 집회·시위 문화는 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대통령 집무실 앞 집회·시위 금지는 표현의 자유가 다시 퇴행하는 신호이자 민주국가로서의 위상을 스스로 흠집내는 처사임을 정부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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