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회원들이 1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들머리에서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기념대회 행진을 하고 있다. 경찰은 집시법 11조의 '대통령 관저 반경 100m 이내 집회 금지'를 근거로 공동행동의 집회 신고에 금지 통고를 했다. 그러나 법원은 ‘집무실이 관저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는 것으로 보인’며 집무실 100m 이내 구간에서의 행진을 허용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는 다르다’는 법원 판단에 따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으로 500여명 시위대가 평화롭게 지나간 14일 오후, 경찰은 “전례 없는 집무실 앞 100m 이내 집회”라며 펜스를 치고 경찰 500여명을 배치했다. 정작 취임 뒤 첫 휴일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 시간 서울 광장시장에서 빈대떡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구두를 샀다. 법원 판단은 평일이라도 경호 등에 문제가 없는 한 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는 취지인데, 경찰은 대통령이 출근하지 않는 휴일에도 모든 집회를 틀어막겠다며 소송으로 맞서고 있다.
14일 오후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회원 500여명은 서울 용산역 앞에서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기념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후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을 지나 녹사평역 이태원광장까지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집무실 앞에서 15분 정도 머물며 성소수자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경찰과의 충돌은 없었다.
경찰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의 ‘대통령 관저 100m 이내 집회·시위 금지’ 규정을 자체적으로 확대 해석한 뒤 ‘대통령 집무실 100m 이내 집회·시위도 금지된다’는 기준을 세운 상태다. 지난 11일 서울행정법원이 무지개행동 행진을 허용하며 “대통령 관저에 집무실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놓았지만, 경찰은 이를 무시하고 이미 신고된 집회는 물론 향후 집회에 대해서도 일괄 금지통고 방침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경찰의 일괄 금지 방침은 불과 4년 전에 나온 헌법재판소 판례에도 맞지 않는다. 2018년 5월 헌재는 집시법의 ‘국회의사당 앞 100m 이내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선고하면서 “국회 업무가 없는 공휴일이나 휴회기 등에 행하여지는 집회처럼 국회의 헌법적 기능이 침해될 가능성이 없거나 현저히 낮은 경우에는 집회를 허용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에 2020년 6월 집시법은 ‘국회 활동을 방해할 우려가 없는 경우’ 등 예외 사유를 담아 개정됐다. 같은 이유로 집회가 금지되던 법원 앞도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 경우”라면 집회를 열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15일 “국회나 법원과 달리 대통령 집무실은 대통령 개인뿐만 아니라 관련 업무가 24시간 돌아간다”며 헌재와 법원 판단을 따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무지개행동 소송을 대리한 박한희 변호사는 “국회 등과 달리 집무실 앞만 절대 집회를 열면 안 된다는 논리는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경찰은 오는 21일 용산 집무실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 맞춰 참여연대가 신고한 한반도 평화 요구 기자회견과 집회도 금지통고한 상태다. 이 역시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집무실≠관저’ 판단을 이미 내놓은 만큼 법원이 경찰 요구를 모두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다만 정상회담 특수성을 고려해 시간·인원 등에 조건을 달아 허가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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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42837.html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박지영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