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 겸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오른쪽)가 5일(현지시각) 핀란드 헬싱키 알토대학교에서 국제수학연맹(IMU)이 수여하는 ‘필즈상’을 수상하고 있다. 헬싱키/AP 연합뉴스
허준이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 겸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5일 ‘수학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받았다. 100년이 훌쩍 넘는 세계수학자대회 역사에서 한국계 수학자가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대단한 쾌거다. 우리 수학계의 숙원이 이뤄진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학을 비롯해 우리의 기초학문 분야 전반에서 교육과 연구 환경이 갈수록 척박해지는 것을 생각하면, 수상을 마냥 기뻐하거나 환영하고 말 수는 없다.
필즈상은 국제수학연맹이 4년마다 여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만 40살 미만의 수학자에게 수여한다. 수상 주기와 나이 제한을 고려하면 ‘노벨상보다 받기 어렵다’는 말도 크게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허 교수는 ‘리드 추측’과 ‘로타 추측’ 등 11개의 수학적 난제들을 풀고 대수기하학의 새 지평을 연 공로로 이미 ‘블라바트니크 젊은 과학자상’(2017), ‘뉴호라이즌상’(2019) 등 세계적 권위가 있는 과학상을 잇따라 수상했다. 더구나 그가 국내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석사까지 마쳤다는 점에서 국적이나 혈연의 뿌리가 같다는 것 이상의 자부심을 우리에게 준다.
그러나 허 교수가 국내에서 공부한 과정은 익숙한 경로와 사뭇 달랐고, 순탄하지도 않았다. 어려서 수학을 좋아했지만, 입시 위주의 수학 교육 탓에 흥미를 유지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시를 쓰겠다며 학교를 관뒀고, 검정고시를 쳐서 대학에 들어갔다. 학부에서도 수학이 아닌 천문학을 전공하다, 마지막 학기에 일본 출신 세계적 수학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 하버드대 명예교수의 강의를 수강한 걸 계기로 뒤늦게 수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 뒤 허 교수가 거둔 놀라운 성취를 개인의 탁월함만으로 설명하는 건 충분하지 않다.
그가 입시 교육에 길들여졌어도 세계적 수학자가 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소년 허준이’의 방황과 낯선 경로 선택을 지지해준 부모는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하지만 그런 부모는 대단히 예외적이다. 암기식 수학 교육과 의대 진학을 강요하는 게 우리 교육의 현주소다. 입시 위주의 중등교육과 도구적 응용학문에 경도된 고등교육을 이대로 둔 채 세계적인 기초과학자를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기다. “교육부는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대통령 한마디에 반도체학과 증원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정부의 교육정책이 제2, 제3의 허준이를 싹부터 꺾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