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이 지난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8일 수도권에 퍼부은 집중호우로 9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막심했다. 서울 관악구 반지하 방에 살던 일가족 3명이 밀어닥치는 물을 미처 피하지 못해 숨졌고, 동작구에선 쓰러진 가로수를 정리하던 구청 직원이 감전사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피해 복구와 지원에 정부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재난은 늘 갑작스레 닥치고, 이에 대처하는 국가·사회의 역량을 시험한다. 이번 폭우 사태도 여러가지 돌아볼 점을 던져준다.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폭우라고는 하나, 재난 대처 태세의 문제점도 적잖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피해가 집중된 서울 남부는 유사한 물난리를 겪은 바 있다. 2010년과 2011년 집중호우로 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기고 2011년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로 대규모 인명 피해까지 입었다. 이후 배수 시스템 개선 사업 등 수해 방지 대책을 세웠지만, 이번에 전혀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근래 장마 기간이 대폭 늘어나는 등 여름철 강수 패턴이 급변하고 있는데도 근본적인 집중호우 대비책을 세우기보다는 땜질식 대처에 머물렀던 것이다. 오히려 서울시의 수해방지·치수 예산은 2020년부터 감소 추세에 있고 올해는 전년보다 896억원 삭감됐다고 한다. 서울시 안전총괄실 실·국장도 모두 공석이라는데, 안전 분야에 대한 무신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재난 상황에 대처하는 정부의 자세도 매우 실망스러웠다. 집중호우가 예보됐는데도 사전 경고나 위험 관리 조처가 부족했다. 행정안전부는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뒤인 9일 새벽 1시에야 풍수해 위기 경보를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올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퇴근 뒤 집에 머물며 전화로 상황을 파악하고 지시를 내렸다든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밤 10시가 다 돼서야 시청에 복귀했다는 게 입방아에 오르는 것도 정부의 대처가 시민들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비상시 대통령의 주거 공간과 집무실이 달라 빚어질 수 있는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우려의 소리도 높다. 그런데도 대통령실 쪽이 9일 “과거 정권 매뉴얼대로 한 것”이라며 반박하는 모습은 재난 상황에서 정부와 지도자가 국민들에게 어떤 믿음을 줘야 하는지 모르는 듯 보여 걱정스럽다. 새 정부가 국정의 변화를 모색했다면 그에 맞게 재난 컨트롤타워 기능도 정비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성찰조차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도 예상치를 벗어나는 물폭탄이 어느 지역에든 닥칠 수 있다. 이제라도 수해 취약지에 대한 진단과 대책 마련에 정부와 지자체가 과도할 만큼의 역량을 쏟아야 할 것이다. 반지하 방에서 희생된 이들과 같은 재난 약자들에 대해선 더욱 세심한 보호 방안도 마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