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신당역 화장실 들머리에 마련된 스토킹 살인 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에서 한 시민이 추모 글을 쓰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1일은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 되는 날이다. 1999년 관련 법률이 처음 발의된 지 22년 만에 어렵사리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법 시행 이후에도 스토킹 가해자에 의해 목숨을 잃는 희생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 14일 발생한 서울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법 제정 때부터 허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음에도 정부와 국회가 뒷짐만 진 채 방치해온 탓이 크다. 법무부는 이 사건 이후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뒤늦게 보완에 나서, 지난 19일 스토킹 처벌법 등의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미흡하다.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스토킹 처벌법 및 전자장치 부착법 개정안’을 보면,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 불벌죄’ 조항이 삭제됐다. 스토킹 범죄는 주변인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해자가 합의를 종용하는 2차 가해를 하거나, 피해자가 추가 보복을 우려해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힐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 법 제정 때부터 제기돼온 터다. ‘지인 능욕’ 등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스토킹을 처벌하는 규정이 신설됐고, 가해자에 대한 잠정 조치 유형에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이 추가됐다. 여성단체와 전문가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내용이다.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뒤에야 부랴부랴 뒷북 대책을 내놓는 일이 반복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법무부의 개정안이 이전보다 진전된 조처를 여럿 담고 있긴 하지만, 그 정도로 갈수록 심각해지는 스토킹 범죄에 온전히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법이 다양한 스토킹 행위를 포괄하지 못하는 점이 큰 문제다. 현행법은 처벌하는 스토킹 유형을 다섯 가지로 못 박고 있다. 개정안은 여기에 ‘온라인 스토킹’을 추가했을 뿐이다. 여전히 법에 명시되지 않은 유형의 스토킹은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 독일 형법처럼 법에 열거된 행위와 유사한 방식의 스토킹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피해자의 범위도 가족 등 주변인으로 넓혀 두텁게 보호해줄 필요가 있다.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는 80% 이상이 여성이다. 구조적 성차별에서 비롯된 젠더폭력으로 봐야 한다. 처벌 못지않게 엄존하는 성차별과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이 성평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여성가족부를 해체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