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최근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가 각각 32년, 15년 만의 기록적인 약세를 보이고 원-달러 환율도 1420원대에서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 등 외환시장이 마치 폭풍 전야 같다. 채권시장도 정부의 ‘50조원+알파’ 투입에 이어 한국은행까지 나서 유동성을 공급하자 가까스로 진정되고 있으나,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형국이다. 한·미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이 지속되는데다 자금 수요까지 몰리는 연말이 다가오면서 금융·외환시장의 ‘발작’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엔화는 최근 심리적 저항선인 달러당 150엔을 돌파했는데, 이는 일본 경제의 ‘거품 붕괴’ 시기인 1990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일본 중앙은행의 시장 개입으로 28일 147엔으로 내려왔으나 엔 약세 현상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8월 중순까지만 해도 달러당 6.7위안 수준이었던 위안화 가치도 25일 15년 만에 최저인 7.2위안으로 떨어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본 유출 압력이 커졌음에도 두 나라가 확장적 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영향이 크다. 금융시장 일각에선 아시아의 중심 통화인 엔·위안화 약세는 외국인 자금의 아시아 이탈을 초래해 제2의 아시아 외환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내놓고 있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런 엄중한 상황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지난 27일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본 것처럼,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사례를 거론하며 수출 확대를 위기 타개책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과거 위기 때와 달리 현재는 수출시장에서 경쟁국인 중·일의 통화가 약세인 점, 에너지·원자재 가격이 폭등한 점 등을 고려하면 원화 약세가 수입 증가와 경상수지 적자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또한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감세를 통한 투자 활성화를 위기 타개책으로 밝히고 있는데, 감세는 영국 사례에서처럼 우리 정부의 ‘인플레와의 전쟁’에 대한 정책 신뢰성을 떨어뜨려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
‘김진태발’ 채권시장 위기는 봉합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자금을 쏟아부어도 해결하기 힘든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정부는 현 상황을 냉철히 인식하고 현실에 맞는 대책을 수립하기 바란다. 야당도 이번주부터 시작되는 예산안 심사에서 감세안 등 경제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는 정책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따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