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 왼쪽 끝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정부가 연말을 앞두고 1373명에 이르는 대규모 특별사면·복권을 발표했다. 검토 단계부터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를 비롯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 각종 부정·비리로 처벌받은 정치인 9명, 공직자 66명이 대거 포함됐다. 정부는 이번 특사의 명분으로 “범국민적 통합”을 내세웠다. 하지만 대상자의 면면을 보면 보수층 챙기기가 두드러진 ‘대통령 마음대로’ 특사에 다름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 내세운 ‘공정과 상식’의 원칙을 무너뜨렸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변호사비 대납’ 형태로 뇌물을 수수하는 등의 중대 범죄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이 확정됐으나 그가 수감 생활을 한 것은 958일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번 사면으로 남은 형기 15년과 미납 벌금액 82억원을 면제받고 경호·경비 예우도 받게 됐다.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과반이 사면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정부는 이를 무시했다. 김 전 지사는 스스로 사면을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음에도 명단에 끼워 넣었다. 누가 봐도 이 전 대통령 사면을 위한 정치공학적 ‘구색 맞추기’ 다.
이번 특사 대상 대부분은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사 재직 시절 호흡을 맞춰 처벌했던 인사들이다. 윤 대통령이 상사로 모셨던 우 전 수석은 이번 특사로 변호사 개업도 가능해졌다. ‘화이트 리스트’로 처벌받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도 복권의 혜택을 받았다. 특히 우 전 수석의 경우 개인적 선심 베풀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심지어 윤 대통령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까지 형 선고 실효 대상에 포함시켰다. 검사 시절에는 정의의 이름으로 단죄해놓고 이제는 대통령의 권한이라며 마음대로 면죄부를 주는 모양새다. 국정농단 단죄와 촛불의 역사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이들에게 “국가 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이번 특사를 단행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에 공감하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오히려 파렴치한 권력자에 대한 무원칙한 사면은 국민의 정의 관념을 해치고, 국민 통합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앞세워 당선됐다. 또 ‘국정과제’의 첫번째 약속으로 “상식과 공정의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고 공언한 바 있으나 이번 특사로 그런 다짐을 스스로 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