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강제동원 배상 문제 관련 논의를 하기위해 30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선 다음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일 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등 과거사 문제를 덮고 양국 관계 강화로 나아가려고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 정부가 이르면 다음달 강제동원 배상 ‘최종안’을 내놓고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속성 해법 시나리오가 부상하고 있다.
한·일은 30일 서울에서 외교부 국장급 회의를 열었다. 최근 40여일 사이 세번째로 열린 국장급 회의인데 양국 협상이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지난 12일 공개 토론회에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조성한 기금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주는 방안을 사실상 공식화했다. 우리 대법원이 2018년 ‘일본 기업이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확정 판결을 내렸는데,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이 한·일 양국 기업의 기부금 등을 받아 일본 피고 기업 대신 배상하는 방안이다.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들이 ‘굴욕 외교’라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열쇠는 일본이 쥐고 있다. 일본이 정말 한-일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다면, 한국에 모든 것을 떠넘기는 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강제동원 가해자들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 등 피고 기업이 배상기금 조성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게 하고,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적극적으로 밝혀야만 한-일 관계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교도통신>은 한국 정부의 배상안이 확정되면 일본 정부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과’를 언급한 무라야마 담화나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과가 형식적인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앞으로 역사 교육 등을 통해 다시는 이런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배상이 끝났다’는 입장만 고집하지 말고, 피고 기업들이 배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정부는 2월 안에 강제동원 해법 발표, 일본의 사과와 대한국 수출 규제 해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정상화 등을 일괄타결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피해자들을 설득하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해 외교를 해나가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장애물’처럼 여기면서 한-일 안보협력 등에만 속도를 내는 식으로는 한-일 관계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