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이 지난해 8월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유와 체제변화, 그리고 가치정당의 문제’를 주제로 열린 국민의힘 공부모임 ‘새로운 미래 혁신24’ 주최 세미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김병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미래발전위원장 겸 회장 직무대행으로 내정했다. 6개월간 조직 혁신을 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김 회장이 현 정권 출범에 깊이 관여한 정치인 출신이라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이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때 정경유착이 드러나 존폐의 갈림길에 섰던 전경련이 다시 정경유착으로 생존을 모색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전경련은 19일 “김 내정자는 풍부한 경험과 학식뿐 아니라 전경련이 지향하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신념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전경련을 과도기적으로 맡아 혁신을 이끌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진보·보수를 넘나든 노회한 정치인 출신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일했는가 하면, 2018~2019년에는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또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 캠프 상임선대위원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을 지냈다.
전경련은 태생적으로 재벌 총수들의 이익을 대변하게 돼 있다. 법정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들이 회원인 것과 달리, 사단법인인 전경련은 주요 재벌·대기업 회장과 최고경영자들이 주 회원이기 때문이다. 전경련이 어느 조직보다도 상속세 완화를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권과 관계가 돈독해야 한다. 전경련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때 미르·케이(K)스포츠재단의 후원금 모금 창구 노릇을 한 게 드러나 위상이 급속도로 추락했는데, 이번 정부 들어 위상 회복을 노려왔다. 이게 여의치 않자 아예 정권과 가까운 인사를 영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재벌과 권력 상층부 간의 은밀한 거래 관계인 정경유착의 새로운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경유착 단절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도 모자랄 판에 정권과 가까운 정치인 출신을 영입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전경련은 그의 영입을 당장 철회하기 바란다.
김 회장도 처신을 신중히 해야 한다. 김 회장이 평소 자유시장경제의 신봉자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전경련과 성향이 맞을 수도 있다. 직업 선택의 자유도 있다. 그러나 현 정권 출범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 아무리 짧은 기간이라도 전경련 수장을 맡는 것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정경유착 근절에도, 전경련의 쇄신 작업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