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26일 직장인 절반 가까이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응답한 이들도 열명 중 네명꼴이었다. 법으로 규정된 제도들조차 상당수 노동자들에겐 여전히 ‘그림의 떡’으로 남아 있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건 참으로 후안무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남녀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응답이 45.2%나 됐다. 이런 응답은 특히 비정규직(58.5%), 5인 미만 사업장(67.1%), 월 급여 150만원 미만 노동자(57.8%)한테서 높게 나왔다. ‘노동 약자'가 출산·육아 지원 제도에서도 소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출산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한 직장인도 39.6%나 됐다.
있는 제도조차 제대로 활용이 안 되는 사례가 어디 이것뿐인가. 임신·육아 등을 위해 노동자가 회사에 노동시간을 줄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도 실질적인 권리로 자리잡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의 2020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서 ‘임신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활용한 직장인은 5.9%,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쓴 직장인은 6.4%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실은 여성을 ‘경력 단절’로 내몰곤 한다. 한국 여성의 고용률이 30대에서 크게 낮아졌다 40대에 다시 상승하는 엠(M)자형으로 나타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국의 성별임금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부동의 꼴찌를 기록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18년(0.98명) 처음 1명 아래로 떨어진 데 이어 해마다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오이시디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을 밑도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나라의 존망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출산과 육아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한주에 최대 69시간(주 7일 기준 80.5시간) 일을 시킬 수 있도록 노동시간 제도를 개편하려 하고 있다. 육아도 ‘몰아서’ 할 수 있다고 보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