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은 지난달 9일 ‘국민제안’ 누리집을 통해 티브이 수신료 징수방식에 대한 여론 수렴에 나섰다. 국민제안 누리집 갈무리
대통령실이 ‘국민제안’ 누리집에서 <한국방송>(KBS)의 티브이(TV) 수신료 징수 방식에 대해 벌이고 있는 찬반 여론조사가 중복 투표(어뷰징)도 가능한 엉터리 조사인 것으로 <한겨레> 취재 결과 드러났다. 한 사람이 의도적으로 찬반 의견을 여러번 표시하는 방식으로 투표 결과를 왜곡할 수 있으니, 국민 의견 수렴을 빙자한 여론몰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방송>의 주요 재원인 수신료를 볼모로 공영방송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한겨레> 5일치 보도를 보면, 대통령실이 지난달 9일부터 국민제안 누리집의 ‘국민참여 토론’ 게시판에서 진행 중인 ‘티브이 수신료 징수 방식(현 수신료와 전기요금 통합 징수) 개선’ 관련 의견 수렴 과정에서, 복수의 에스엔에스(SNS) 계정 등을 이용하면 동일인이 여러 차례 찬반(추천·비추천) 의사를 표시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본인 인증 절차 없이 계정을 여러 개 만들 수 있는 구글을 이용해도 어렵지 않게 반복해 응답할 수 있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특정 세력이 얼마든지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부 보수 유튜버들은 “대통령실 국민제안 토론에서 승리하고 수신료 폐지 이뤄내자” 등의 제목을 단 영상으로 국민제안 응답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공영방송의 공공성·독립성 문제와 직결되는 민감한 이슈를 놓고, 진지한 고민과 토론도 없이 이런 허술한 조사로 ‘여론전’을 펴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정부와 여당이 뜬금없이 수신료 개편 여론 띄우기에 적극 나선 이유를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전체 수입의 45%를 수신료에 의존하는 <한국방송>을 압박해 정권에 순응하는 방송으로 길들이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실제 대통령실이 수신료 징수 방식에 대한 의견 수렴에 나서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원내대책회의에서 ‘좌편향 방송’ 운운하며 “케이비에스는 내부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데, 지금 당장 내부에서 혁신하지 않는다면 수신료 분리 징수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여당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수신료 징수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한 충분한 고려나 재원에 대한 정책적 대안 제시도 없이 정부·여당이 ‘인민재판' 식으로 밀어붙인다면, ‘방송 장악'이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