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신군부의 ‘2인자’였던 장세동씨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당시 광주 현지에 있었다고 최근 <한겨레> 인터뷰에서 인정했다. 장씨의 광주 방문 사실은 관련자 증언이 나온 바 있지만, 본인 입으로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신군부 ‘수괴’였던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의중을 심복인 장씨가 현지 계엄군 지휘부에 전달하는 비공식 지휘계통이 가동됐을 수 있다. 전두환의 유혈진압 책임을 더욱 철저히 규명하는 차원에서 주목할 지점이다.
당시 공수특전사령부(특전사) 작전참모였던 장씨는 5·18 직전인 1980년 5월15일 광주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를 방문한 데 이어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었던 5월21일, 최후 진압작전이 벌어진 5월27일에도 광주에 머물렀다고 밝혔다. 특히 장씨는 직속상관인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주요 작전 시기마다 광주를 오갔다고 한다. 정호용씨는 2021년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장씨의 당시 행적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광주에 투입된 공수여단이 전교사와 31사단에 배속돼 특전사령관인 자신도 작전 지휘계통에서 배제돼 있었는데 부하였던 장씨가 보고도 없이 광주를 드나든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장씨의 행적은 전두환의 학살 책임 전모를 밝히는 데 단초가 될 수 있다.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계엄사령관-2군사령관-전교사령관-31사단장-공수특전여단장’으로 이어지는 지휘계통에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게 학살 책임을 부정하는 근거였다. 하지만 이 같은 지휘계통에 속하지 않았던 장씨가 상관인 특전사령관의 지휘도 받지 않으면서 광주를 드나들었다는 점에서 전두환을 대리해 암암리에 진압작전에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장씨는 “전두환 보안사령관하고 특전사 작전참모하고는 아무것도 관계가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뻔히 알려져 있는데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변명이다. ‘5·18에 대해 지금이라도 사과할 용의는 있느냐’는 질문에는 “지금 당장 할 필요도 없고 할 것이 없다”고 답했다. 2021년 사망할 때까지 한마디 반성과 사죄도 없었던 전두환의 모습을 다시 보는 듯하다. 역사의 진실을 낱낱이 파헤치지 않으면 책임 회피와 역사 왜곡은 독버섯처럼 고개를 들게 마련이다.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많다. 광주 학살의 비공식 지휘계통의 실체에 대해서도 명확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