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간호법 공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간호법 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달 초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취임 1년여 만에 벌써 두번째 거부권 행사다. 대통령의 잇따른 거부권 행사는 행정부가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는 행위로,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근간마저 흔드는 행위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이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사협회 등이 간호법에 반대해온 논리를 되풀이한 것이다. 간호사 처우개선 등을 담은 간호법의 핵심 쟁점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제1조) 정한 부분인데, 의사협회 등은 ‘지역사회’라는 문구가 간호사 단독 개원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라며 격렬히 반대해왔다. 하지만 간호법 제정안은 현행 의료법이 명시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에도 정부·여당의 중재안은 일관되게 의협 쪽 의견만 반영했다는 지적을 받으며 간호사단체의 반발을 샀다. 앞서 2021년에는 국민의힘 소속 의원 33명이 간호법을 별도 발의하기도 한 바 있다. 그런데 현 상황을 보면, 당 차원의 입장이 뒤집히고 윤 대통령 역시 대선 기간의 약속을 스스로 파기한 셈인데 이에 대한 해명도 설득도 이뤄진 게 없다. 간호사단체가 납득할 만한 책임 있는 대책을 제시하거나, 양쪽을 중재하려는 노력은 전혀 없이 대통령이 국회에서 논의된 법안에 전가의 보도처럼 거부권을 휘두르는 것은 국회 무력화 시도이자 갈등 조정에 무능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간호사단체는 16일 거부권 행사에 반발하며 단체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지만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할 수 있는 만큼 실제 행사는 매우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정부 수반으로서의 책임이 아닌,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적 행위 없이 잇따른 거부권 행사로 극단적 대치 구도를 고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역할은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부권 행사에도 전혀 아랑곳 않는 태도다. 앞으로도 계속 거부권을 무기로 야당과 국회에 맞서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우려가 더 커진다. 잇따른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대통령과 여당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