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부인 기시다 유코 여사가 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이 패망하던 1945년, 강제징용을 당하거나 일자리를 찾아가 일본에 머물고 있던 한국인은 240만명에 이르렀다. 제2군총사령부가 있던 일본 남부의 병참기지 히로시마에도 14만명이 살고 있었다. 그해 8월6일 아침, 미군이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터트렸다. 1972년 원폭피해자협회 집계로 한국인 5만명이 피폭을 당하고, 그 가운데 3만명가량이 사망했다. 1967년 한국에서 발족한 원폭피해자협회는 일본 정부에 치료와 피해보상을 요구하면서, 1970년 민단 히로시마본부 주도 아래 위령비를 만들어 세웠다. 비석엔 이렇게 새겨져 있다. “5천년 민족사에 여기 잠든 영령들이 겪은 일만큼 슬프고 아픈 일은 없었습니다. 한민족이 나라 없는 슬픔을 뼛속 깊이 맛본 것은 태평양전쟁을 통해서였고, 그 정점은 바로 피폭의 비극이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위령비에 참배했다. 양국 정상의 동반 참배는 사상 처음이다. 일본은 위령비를 홀대해왔다. 처음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안에 세우는 것도 거부했다. 그래서 밖에 세운 것을 1999년에야 안으로 옮길 수 있었다. 일본 총리 가운데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유명한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가 1999년 위령비의 공원 안 이전 소식을 듣고 헌화한 것이 유일하다. 한국 정부도 위령비를 무시해왔다. 한국 대통령의 참배도 처음이다. 기시다 총리가 지난 7일 방한 때 양국 정상의 동반 참배를 제안했다고 한다. 비록 헌화와 10초간 묵념으로 끝난 짧은 행사였지만, 이번 동반 참배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의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고, 재일 한국인의 마음에도 조금은 온기를 불어넣었을 것이다.
매년 8월6일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위령제에 그동안 일본의 유력 인사는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의 이번 결단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참배로 한·일 양국이 셔틀외교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공식 사과도 없이 ‘강제징용 배상’을 얼버무려 버린 일까지 덮을 수는 없다. 대통령실은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가운데는 강제징용 한국인 피해자도 포함돼 있다’고 애써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번 참배를 우회적인 사과로 받아들이기에도 무리가 있다. 일본은 원폭 투하를 절대악에 의해 일본이 피해를 당한 일로 본다. 한국인이 함께 당한 피해를 위로한다면서, 식민지배가 그 원인이 된 데 대한 명확한 책임의식이 없다면 진정한 사과라 할 수 없다. 기시다 총리의 발언은 여전히 선문답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