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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졸속으로 점철된 ‘수신료 분리’ 속도전, 무책임하다 [사설]

등록 2023-06-25 20:07수정 2023-06-26 02:41

14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한국방송〉(KBS) 수신료 분리 징수 관련 시행령 개정 등을 논의하기 위한 방송통신위원회 제19차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14일 오전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한국방송〉(KBS) 수신료 분리 징수 관련 시행령 개정 등을 논의하기 위한 방송통신위원회 제19차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정부가 <한국방송>(KBS)의 티브이(TV) 수신료 분리 징수를 위한 시행령 개정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면서 ‘졸속 추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회적 논의를 거쳐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일을 대통령실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상명하달식으로 추진한 탓이 크다. 이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독립성이 보장된 합의제 행정기관으로서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대통령의 친위대’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방통위는 지난 16일 한전의 전기요금 고지서를 통해 티브이 수신료를 통합 징수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대통령실이 방통위와 산업통상자원부에 티브이 수신료 분리 징수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지 11일 만이다. 시행령 개정안이 방통위 전체회의에 보고되고 단 이틀 뒤에 이뤄진 일이니 검토나 논의가 제대로 됐을 리가 만무하다. 방통위 상임위원 5명 중 최근 면직된 한상혁 위원장을 포함해 2명이 공석인 상태에서 공영방송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중차대한 사안을 서둘러 결정한 것도 절차적 정당성 측면에서 흠결이 크다.

더욱이 방통위는 입법예고 기간도 10일로 매우 짧게 정했다. 입법예고는 국민에게 법령 개정안의 취지와 내용을 알리고 의견을 수렴하는 법적 절차다. 행정절차법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입법예고 기간을 40일 이상 두도록 하고 있다. 방통위는 ‘신속한 국민의 권리 보호를 고려한 조처’라고 설명하지만, 현행 수신료 제도가 30년 가까이 유지돼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방통위한테서 입법예고 기간 단축 협의 요청을 받은 법제처가 단 하루 만에 방통위의 주장을 고스란히 옮겨 적은 듯한 내용의 한 문장짜리 검토 확인서를 회신했다는 사실도 25일 확인됐다. 법제처까지 방통위의 속도전을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사실 이런 졸속적인 정책 추진은 지난 3월 대통령실이 느닷없이 엉터리 온라인 찬반 투표를 실시할 때부터 예고된 일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수신료 개편 드라이브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실려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대통령의 ‘하명’에 따른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공영방송의 역할이나 합리적인 재원 구조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됐을 리가 없다. 지금 정부가 보여주는 모습은 하루라도 빨리 방송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조급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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