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5월18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집회에 대한 수사 계획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타워크레인 노동자에게 주는 월례비는 사실상 임금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월례비를 ‘건폭’(건설현장 폭력행위)으로 몰아 건설노조를 탄압해온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고 한다. 월례비는 불법 부당한 금품 갈취가 아니라는 게 판결 취지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건폭몰이’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입만 열면 ‘법치’를 강조하는 정부가 실제로는 법치를 무시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일 보도자료를 내어 ‘6월29일 월례비 관련 대법원 판결은 월례비를 임금으로 판단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한 공사업체가 타워크레인 기사들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항소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타워크레인 월례비를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 성격을 갖는다”고 판단해 기사들의 손을 들어준 항소심이 옳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심리불속행을 이유로 대법원이 “구체적 심리를 하지 않은 것”이라며 월례비를 임금으로 판단한 게 아니라고 강변한다. 항소심을 뒤집을 만한 최소한의 근거가 없어서 본안심리를 하지 않은 채 재판을 끝내는 것이 심리불속행이다. 만약 대법원이 월례비를 공갈이나 갈취로 판단했다면 본안심리를 거쳐 항소심을 파기했을 것이다. 국토부는 도대체 무슨 궤변을 늘어놓는 것인가.
경찰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찰은 ‘대법원 판결은 민사소송에 대한 판단에 불과하다’며 건설노조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민사인지, 형사인지에 따라 월례비에 대한 법적 판단이 달라지는 게 아닌데도 엉뚱한 소리를 한다. 오히려 불법 여부에 대한 판단은 형사소송에서 더 엄격하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월례비는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한 추가 작업 등을 위해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관행적으로 지급하는 일종의 수고비다. 공갈이나 갈취가 아니라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받는 돈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월례비를 콕 집어 “건설 현장의 갈취·폭력 행위를 뿌리 뽑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국토부는 월례비를 받는 기사의 면허를 정지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놨고, 경찰은 단일 사건으로 최대 규모의 특진을 내걸고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다.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된 인식 탓에 노동자들이 탄압받고 있다. 정부는 대법 판결의 취지를 존중해 ‘건폭몰이’를 중단해야 한다.